인천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헌상 차장검사)은 12일 유 전 회장 일가 비리에 대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도피를 총괄 지휘한 이가 누구냐'는 질문에 "전반적으로 오 전 대사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원파 내 영향력은 유병언 씨와의 관계가 가까울수록 커졌다. 유병언 씨와 인척 관계인 데다 오씨의 사회적 신분도 무시할 수 없었다. 오씨는 2010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체코 대사를 지냈다.
오씨는 유병언 씨의 파리와 체코 사진 전시회 당시 각국 외교관을 초청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유병언 씨 측이 우리나라 주재 모 대사관에 정치적 망명 가능성을 타진한 것과 관련해 외교관인 오씨가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오씨 부부는 지난 4월 20일 검찰 수사가 시작되고 사흘 뒤 유병언 씨가 도피를 시작할 때부터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유병언 씨는 4월 23일 새벽 경기도 안성에 있는 금수원에서 빠져나온 직후 '신엄마' 신명희(64·여) 씨의 언니 소유 아파트에 하루 동안 머물렀다.
이후 유병언 씨 여동생의 단독주택에서 열흘 가까이 은신했다가 5월 3일 순천 송치재 휴게소 인근 별장으로 도피한 것으로 조사됐다.
오 전 대사는 부인이자 유병언 씨의 동생인 유경희 씨와 함께 유 전 회장 도피 과정에서 의식주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조력했다.
오 전 대사는 유병언 씨와 직접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유 전 회장의 지시사항을 이행하고, 도피처를 물색하는 등 도피를 총괄 지휘했다. 검찰은 유병언 씨의 지시를 받아 오 전 대사가 구원파 신도들에게 연락하면서 도피처 마련 등을 주도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오씨는 또 5월 10일까지 다른 도피 총책인 이재옥(49·구속) 헤마토센트릭라이프재단 이사장과 함께 순천에 있는 유병언 씨에게 검찰의 수사 진행 상황, 주요 범죄 혐의점, 언론과 구원파 내부 동향을 보고했다.
보고는 '김엄마' 김명숙(59·여) 씨 등 측근에게 편지를 써서 순천으로 보내는 방식을 택했다.
보고를 받은 유병언 씨는 가장 믿을 만한 오씨와 이 이사장에게 대응 방안에 관한 지시를 쪽지에 써 전달했다.
오씨는 또 유병언 씨가 순천으로 도피하기 전인 4월 말 구원파 신도인 또 다른 김모 씨에게 양평 별장을 유병언씨 은신처로 제공하라고 지시했다.
유병언 씨를 가까운 거리에서 도우라며 거처를 별장 인근으로 옮기라고도 요구했다. 김씨는 오씨의 지시에 따라 별장을 대청소하고 준비했지만 유병언 씨는 양평 대신 순천을 은신처로 택했다.
오씨 부부는 지난 6월 20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던 중 긴급체포돼 최근까지도 불구속 상태에서 수차례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유병언 씨 도피를 총괄 기획한 혐의(범인도피교사)로 오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같은 혐의를 받는 오씨 부인에 대해서는 기소유예 처분했다.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범인을 은닉·도피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그러나 친족특례 조항에 따라 가족이나 친척이 범인을 은닉해 준 경우 법적 처벌을 면할 수 있다.
검찰은 오 전 대사를 구속하지 않고 불구속기소한 이유에 대해 "친인척 관계이기 때문"이라며 "범인도피와 관련해 구속된 친인척은 없다"고 말했다. 오 전 대사가 유 전 회장의 도피를 도운 이유도 "친인척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검찰은 오씨 부부에게 범인도피 혐의 대신 범인도피교사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편지 심부름을 시킬 정도로 오씨 부부의 위상이 그쪽(구원파)에서는 꽤 높았던 것 같다"며 "오씨는 유병언 씨 도피행위와 관련해 실질적인 역할을 많이 했지만 친인척 관계여서 범인도피 교사 혐의만 기소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