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 오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울 광화문에서 천주교 순교자 124위 시복식을 거행한다.
시복식은 신앙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순교자들을 가톨릭교회 공경의 대상이자 성인의 전 단계인 ‘복자(福者)’로 공식 선포하는 일이다.
교황이 순교자의 땅을 찾아 직접 시복미사를 거행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관례적으로 시복미사는 바티칸에서 교황청 시성성(‘하느님의 종’들의 시복 시성을 추진하는 기관) 장관 추기경이 교황을 대리해 거행해왔다.
■시복식 천주교 신자 17만명 참석
미사에는 교황 수행단 성직자 8명과 각국 주교단 60여 명, 정진석 추기경을 비롯한 한국 주교단 30여명 등 100명에 가까운 주교들이 참석한다.
사제 1900여 명과 천주교 신자 17만명도 참석할 예정이다. 주변에서 행사를 지켜볼 시민들까지 감안하면 참석 인원은 50만∼1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교황은 서울시청에서 광화문 앞까지 벌일 퍼레이드를 통해 한국 신자들과 인사한 뒤 광화문광장 북쪽 끝 광화문 앞에 설치될 제대에 올라 미사를 주례한다.
시복식은 최대한 소박하고 간소하게 진행한다. 봉헌예식의 경우 전례에 필요한 것 말고는 다른 봉헌을 일절 하지 않기로 했다.
신자들과 직접 만나 교감하기를 원하는 교황의 뜻에 따라 교황과 시민의 거리도 최대한 좁힌다. 광화문을 배경으로 1.8m 높이의 제단이 설치되고 그 위에 가로 7m, 세로 1.5m, 높이 0.9m의 제대가 놓인다.
이날 교황은 시청에서 광화문 앞까지 퍼레이드하며 한국 신자들과 인사한 뒤 광화문 삼거리 앞 북측광장에 설치될 제대에서 시복미사를 집전한다. 미사 전에는 한국 최대 순교성지이자 이번에 시복될 124위 복자 중 가장 많은 27위가 순교한 서소문 성지도 참배한다.
이번에 시복되는 124위는 한국 천주교 초기 순교자들로 신분사회의 사슬을 끊고 신앙 안에서 인간 존엄과 평등, 이웃사랑과 나눔의 공동체 정신을 몸소 실천한 분들이다. 조선인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를 비롯해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 리더십을 발휘했던 여성회장 강완숙 골롬바, 정약용의 형이자 한글 교리서 <주교요지>를 집필한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천출인 백정이지만 천주교인들의 평등한 대우를 통해 인간 존엄을 지키며 ‘내게 천당은 세상에 하나, 후세에 하나 있다’라고 말했던 황일광 시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신앙을 자신의 삶 안에 일치시킴으로서 한국 교회의 초석을 다졌다.
한국교회사연구소 고문 조광 교수(연세대 석좌교수)는 “천주교 순교자들은 근대 시민사회로 나아갈 규범을 앞장서 실천했던 사람들이다. 사회를 지배했던 가치보다 자신의 믿음을 따르며 기꺼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용기는 신자들뿐만 아니라 물질만능주의에 쉽게 빠지는 현대인들 모두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이번 시복식은 한국 가톨릭교회 사상 처음 자력으로 추진한 시복작업의 결과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한복입은 성모상과 건곤감리 4괘 새긴 교황 의자
이날 행사에는 한복을 입은 성모상이 선보인다.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한국관구 수녀가 조각한 성모상은 어린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내어주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복건을 쓴 아기예수와 비녀를 꽂은 성모가 한복 차림으로 인자한 미소를 띤 게 인상깊다. 또 교황이 미사 중 앉을 의자에는 태극기의 문양인 '건곤감리' 4괘가 새겨진다.
교황이 미사 도중 앉을 의자에는 태극기에 들어가 있는 '건·곤·감·리' 4괘를 새겼다.
제대 양옆을 비롯해 곳곳에 LED 전광판 24대가 설치돼 멀리서도 미사 진행 상황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제대 뒤로는 주물로 제작한 가로 3.6m, 세로 4.6m 크기의 십자가가 8m 단 위에 설치된다. 십자가에는 한국 순교자의 영성이 세계에 알려지기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고 방준위는 설명했다.
교황을 비롯한 주교단과 사제단은 순교를 상징하는 붉은색 제의와 영대(목에서 무릎까지 걸치는 띠)를 착용한다. 제의와 영대는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한국관구 수녀들이 디자인하고 손바느질로 지었다.
사전행사에서는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프란츠 리스트(1811∼1886)의 '두 개의 전설' 중 첫 번째 곡 '새들에게 설교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교황 헌정곡으로 연주한다.
교황은 미사에서 라틴어를 사용하며 신자들은 한국어로 응답한다. 강론은 교황이 이탈리아어로 하고 단락별로 한국어로 순차 통역한다.
교황방한준비위원회는 광화문에서 서울광장까지 1.2㎞를 6개 구역(S, A∼E)으로 나눠 좌석을 배정했으며, 제대와 가장 가까운 A구역에는 춘천, 원주, 안동, 인천 교구 신자들이 앉는다.
시복미사에는 4천600여 명이 자원봉사자로 나서 전국에서 올라오는 1천600여대의 버스 주차관리를 비롯한 안내와 안전, 환경미화 등을 담당한다.
성체분배 담당인원만 900여 명으로 이들이 신자들에게 나눠 줄 제병(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밀가루 빵)이 18만 개에 달한다.
시복식 참가자들은 오전 4∼7시 13개 출입구를 통해 입장하며, 안전을 위해 유리병 제품, 페트병, 플라스틱 재질의 용기는 반입이 제한된다.
이날 행사는 평화방송TV와 라디오, KBS TV를 통해 방송과 온라인으로 생중계되며, CNN 등 외신도 현장을 중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