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 교수의 차이나 아카데미] 한-중 투투데이에 '국교정상화'라는 새 이름을 선사하자

2014-07-23 14:29
  • 글자크기 설정

강효백 경희대학교 중국법학과 교수 겸 서울-베이징 친선우호협회 대표

 

오는 8월 24일은 ‘한중수교 22주년’ 기념일이다. 한국과 중국이 교제를 맺은 지 22년째 되는 날이다. 어쩌면, 22년은 반만년 유구한 한중교류사에 비하면 요즘 젊은이 사이의 유행어 투투데이, 사귄지 22일째 되는 날보다 짧은 시간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가 지난 22년간 품어온 작지만 큰 의문부호 한 가지는 "왜 일본과는 ‘한일 국교정상화’라 부르는데, 중국과는 ‘한중 수교’라고 하는가?"이다.

우선 ‘국교정상화’와 ‘수교’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자. 전자는 ‘국교를 정상적인 상태가 되게 하다’인 반면에 후자는 단순히‘나라와 나라 사이에 교제를 맺음’이다.

어째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일본과는 이른바 ‘비정상화의 정상화’라는 의미를 지닌 친밀한 어감의 ‘국교정상화’라 부르는데 중국과는 메마르고 밋밋한 느낌의 ‘수교’라 하는지, 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필자가 지난 22년간 정·학·언 각계각층의 지식인에게 탐문해 본 결과 뾰족한 답을 한 번도 찾을 수 없었다. 많이 얻은 답은 크게 두 부류다.

하나는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가, ‘수교’나 ‘국교 정상화’나 그거나 이거나 매한가지지, 명칭보다 실제가 중요하지.”라는 답변으로 질문자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는, 심드렁한 말투의 무관심형이다.

또 하나는 대개 근엄한 표정으로 일본은 자본주의 체제 국가이고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 국가라서 일본이 중국보다 이데올로기적 동지의식을 느꼈기 때문에, 한중수교 당시 1992년은 아직 냉전체제가 종식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6.25에 개입하여 통일의 문턱에서 좌절시키고 남북분단의 아픔을 지속시킨 적성국 ‘중공’이었기 때문에, 다정한 어감의 ‘국교정상화’라 하지 않고 밍밍한 느낌의 ‘수교’라고 부른다는 식의 답변이다.

얼핏 그럴싸하다고 생각 들지 모르지만 이는 한물이 지난, 두물, 아니 열물도 더 지난 이데올로기 접근방법에서 벗어나지 않는 설에 불과하다.

정답은 의외로 간단히 나왔다. 중국과 일본의 외교관계수립의 명칭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중국은 2014년 7월 현재 외교관계를 수립한 172개국를 정부공식용어나 신문용어나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수교라는 의미의 ‘건교(建交)’라고 칭한다. 그런데 일본은 미국과는 ‘일미수교(日米修交)’라고 부르는 등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과는 ‘수교’라고 칭하는 반면, 자국이 은혜를 침략으로 되갚아 온 동북아 대표적 두 나라, 한국과 중국과의 외교관계수립을 일컬어 각각 ‘일·한 국교정상화’, ‘일·중 국교정상화’라 부르고 있다.

여기에서 알수 있는 점은 우리나라 외교당국이 중국과 일본 외교관계 수립시 자체적 판단으로 '한중수교', '한일국교정상화’로 칭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문제의 본질이자 심각성이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가 중국과는 ‘수교’라 하고, 일본과는‘국교정상화’라고 부른 이유는 자기 뇌로, 자기정신대로 판단하여 부른 게 아니다. 밤낮 저를 잃고 남만 높여서 남의 발뒤꿈치를 따르는 것으로 장한 체를 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각각 중국과 일본이 부르는 데로 ‘중국 따라하기’, ‘일본 따라하기’를 행하면서 불리게된 비정상적 칭호임이 분명하다.

2014년 현재 한국과 중국은 얼마나 친할까? 중국정부와 언론, 학계의 최신자료를 분석해 보면 중·러 정도는 안 되지만 중·미나 중·일은 물론 중·캐나다보다 친밀도가 높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은 제3세대 장쩌민시대 1990년대부터 다양한 용어를 사용해 상대국과 친교의 원근을 구분해 왔다. 단순수교, 선린우호, 동반자, 전통적 우호협력, 혈맹의 5단계로 나눠 관계변화에 따라 등급을 수시로 변동시켜 왔다. 1990년 중반이후는 혈맹관계(북중관계)를 삭제, 4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동반자 관계는 5단계로 세분된다. ①협력동반자관계는 실용주의에 기초한 것이나 주요현황들에 이견을 갖고 있다. 일본이 대표적이었으나 아베집권이후 일본 군국주의재무장화의 추세가 노골화되고 있는 시진핑 시대 이후로는 동반자 관계가 아닌, 전략우호(战略互惠)관계로 즉 선린우호 보다 못한 단순수교로 강등되었다. ②건설적 협력동반자관계는 근본적 이해충돌이 없고 쌍방이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다.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그렇다. ③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는 상호 이해하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협력할 수 있다. 캐나다. 네팔, 칠레 등이 이에 속한다. ④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는 전략목표와 이익을 상호 공유하고 군사분야의 협력도 가능한 준동맹관계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한국과 파키스탄 등이 해당한다. ⑤전면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는 모든 분야에서 공동의 이익이 일치하여 동맹과 다름없는 형제국가이다. 러시아와 태국, 라오스, 아르헨티나(7월 19일 체결)등이 손꼽힌다.

한·중관계는 1992년 단순수교에서 1993년 경제 통상 중심의 선린우호를 거쳐 1998년 협력동반자관계로 들어섰다. 2003년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로 승급되더니 2008년 양국 정상의 상호 국빈방문을 계기로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격상됐다. 양국의 전략목표가 상호이해에서 상호공유로 승격됐다. 

이처럼 한·중 양국의 친밀도는 대통령 5년 단임제 임기 첫해마다 버전업되어 불과 20년 만에 5단계나 급상승해 왔다. 일본과는 중·일수교 후 40년간 제자리걸음하다가 최근 수교이전 상태로 되돌아갈 만큼 악화된 중일관계에 비하면 극명하게 대조적인 수직상승이다. 더구나 이 달 초 시진핑 주석이 다녀가면서 ‘성숙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내용적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을 합친 액수보다 많은 대중무역액, 대일수출액의 4배에 달하는 대중수출액, 500억 달러에 달하는 대중 투자, 상대국가의 최다를 차지하는 유학생 수, 연간 400만에 달하는 중국인 한국관광객 수 등 한중관계의 진도는 세계외교사상 기적이라는 평을 받을 만큼 눈부시다. 지구상에 오랜 세월동안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며 ‘서로 사이좋게 지내나 같아지지는 않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모델은 한국교류사에 외에서는 찾기 힘들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한·중, 한·일 국교재개를 일컬어 각각 한·중수교, 한·일국교정상화로 차별하여 부르고 있는 상황은 한마디로 ‘비정상’이다. 명칭의 비정상의 정상화가 시급하다. 현실에도 맞지 않고, 균형외교전략 차원에서도 부적절하다. 한·중 교류사를 통틀어 살펴보더라도 한중양국이 우호관계였던 기간이 적대적 기간보다 압도적으로 길다. 오늘날 한·중간의 인적, 물적교류는 한․일간의 그것을 훨씬 초과하였으며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중국교정상화 22주년부터는 밋밋한 어감의 한중수교 대신 역사성과 미래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한중 국교정상화’로 바꿔 부를 것을 제안한다.

그리하여 21세기 아시아 태평양 시대를 상생과 번영으로 나란히 이끌어 나갈 한중 양국의 투투데이, 22주년의 선물로 ‘한-중 국교정상화’의 새 이름을 선사하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