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브릭스판 WB, IMF. 중국의 노림수는?

2014-07-2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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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적 위상강화, 미국견제, 외환보유고 운용처 확보 등 이익 두툼

지난 15일(현지시간) 브릭스 5개국 정상들이 NDB와 CRA 설립에 합의한 후 손을 잡아보이고 있다.[사진=신화사]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신개발은행(NDB)과 위기대응기금(CRA)은 새로운 국제경제체제를 구축하려는 브릭스의 야심을 보여준다.” (뉴욕타임스) “미국이 지배하는 IMF와 WB에 대한 반발로 브릭스가 자체의 금융기관들을 설립하려 한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미국에게 전례가 없던 매우 중대한 도전이다.”(미국 경제정책연구소)

지난 15일(현지시간) 브라질 북동부 포르탈레자 시에서 열린 제6차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신개발은행(NDB)과 위기대응기금(CRA) 설치에 대한 협정이 서명되자 세계 각지의 언론과 연구기관은 일제히 미국중심의 국제금융질서에 지각변동이 시작됐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슈퍼파워'인 미국 중심 체제를 흔들어대는 '사건'을 일으킨 주체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브릭스 5개국이다. 하지만 브릭스를 주도하는 것이 중국이며, 이들 5개국의 '빅브라더'가 중국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막강한 경제력과 잠재성장성을 내세운 중국이 없었다면, NDB와 CRA가 설립되지 않았을 지도 모르며, 설립되었더라도 이토록 위협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NDB와 CRA가 '브레턴우즈' 체제라는 거대한 댐을 허무는 물구멍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브레튼우즈체제 허물 물구멍

브레튼우즈체제는 오는 22일이면 합의 70주년을 맞는다. 2차대전이 막판으로 치달고 있던 1944년 7월22일,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Bretton Woods)에 44개국의 대표들이 모여 전후 국제경제 질서구축을 논의했다. 700여 명의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영국과 미국이 격돌했다. 영국에서는 역사적인 경제학자 케인즈가 나섰고, 미국에서는 해리 덱스터 화이트 재무부 차관보가 나섰다. 3주간 격론 끝에 미국 달러만 금과 일정한 비율로 바꿀 수 있고, 각국 통화가치는 달러와 고정시키기로 했다. 달러가 금으로 가치를 보장받으면서 세계 경제의 수퍼 파워로 올라섰다. 당시 미국은 세계 산업 생산의 절반을 맡았고, 세계 금 보유고의 3분의 2를 확보하고 있었다. 이 체제가 70년을 이어온 것은 물론 미국의 국력이 바탕이 됐다. 그리고 실무적으로 달러 기축통화를 뒷받침한 기구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이었다.

브레튼우즈 70주년을 일주일 앞둔 지난 15일, 브릭스는 세계은행에 대응하는 NDB를, IMF에 대응하는 CRA를 만들었다. 시작은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 하지만 NDB와 CRA가 브레튼우즈체제를 흔들어댈 강한 위협자로 등장할 날이 멀지않았다는 예상이 나온다. 

◆브릭스판 월드뱅크, NDB

'신개발은행'이라고 명명된 NDB는 중국 상하이(上海)에 본부가 들어선다. 초대 총재는 인도가 맡기로 했다. 총재 임기는 5년씩이며, 5개국이 돌아가면서 맡는다. 중국은 다섯번째 순번을 배정받았다. 신개발은행에는 브릭스 5개국 외에 유엔 회원국이라면 어느 나라도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브릭스가 55%이상 지분을 확보하도록 했다.

NDB는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브릭스 5개 회원국이 각각 100억 달러씩 출자해 500억 달러의 초기 자본금을 조성하게 된다. 또 5년 안에 자본금을 1000억 달러로 확대할 방침이다. 세계은행의 자본금은 2013년말 기준으로 2232억달러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자본금도 1635억달러다. 이에 비하면 500억달러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NDB는 저개발국가에 SOC(사회간접자본)건설에 소요되는 차관을 제공하는 기능을 할 예정이다. 세계은행은 빈곤퇴치에 대한 다양한 대출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때문에 브릭스는 "기능적으로 NDB가 세계은행과 배치되는 것은 아니며 상호 보완관계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 역시 지난 8일 중국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면담을 마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NDB는 세계은행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저개발국들이 가난과 싸우고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며 "(설립을)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브릭스판 IMF, CRA

NDB가 세계은행에 대응하는 것이라면 CRA는 IMF와 비슷한 기능을 한다. CRA 역시 NDB와 같이 자본금 1000억 달러로 시작한다. 그 출자금 규모는 국가별로 다르다. 중국이 410억 달러, 브라질·러시아·인도가 각각 180억 달러를 내고 나머지 50억 달러는 남아공이 분담한다. 우선 CRA의 회원국인 브릭스 5개국에 외환위기가 발생하면 구제자금이 투입된다.

브릭스 말고 다른 국가들이 회원국 참여를 원하면 CRA 내부 협의를 통해 참여시킬 수 있다. IMF의 기금이 3680억달러며, 치앙마이기금 역시 2400억달러 규모다. CRA의 규모 1000억달러 역시 이에 비하면 규모가 크지 않다. 하지만 신흥국들은 CRA에 주목하고 있다. 금융위기가 닥치더라도 금융지원 조건이 가혹한 IMF에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NDB와 CRA의 설립으로 브릭스 국가는 물론 신흥국들은 월드뱅크로부터 빈곤퇴치자금을 지원받는 동시에 NDB로부터 항만, 철도 등 국가인프라 개발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다. 또한 CRA를 통해 외환 리스크를 헷지할 수 있게 된다. 벌써부터 나이지리아와 태국 등이 NDB 참여의사를 내비쳤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두둑한 이익챙긴 중국

중국은 이번 국제기구 창설로 인해, 미국 주도의 금융질서에 대항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중국은 현재 아시아를 두고 미국과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미래 세계를 두고 경쟁을 벌일 태세다. 경제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고, 미국 체제를 견제할 장치를 만들었다는 것은 중국의 큰 성과다.

이와 함께 중국은 브릭스 5개국의 리더국가로서 이번 브릭스 정상회담 내내 국제적인 스폿라이트를 받는 외교적인 성과도 냈다. NDB 본부를 상하이로 끌어오면서 총재국 순번은 맨 마지막을 배정받는 유연한 협상능력을 보여줬으며, CRA 출자금 중 41%를 부담하는 '통 큰' 모습도 드러냈다.

또한 중국은 든든한 외환보유고 투자처를 확보했다. 중국은 외환보유고가 4조달러에 육박하지만 미국국채 말고는 뾰족히 투자할 만한 곳이 없다. 앞으로 NDB가 대출을 실행하려면 예금을 받거나 채권을 발행해야 한다. 이 때 중국은 풍부한 외환보유고를 이용해 NDB에 예금을 하거나 NDB발행채권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중국은 신흥국 금융질서를 주도하면서 관련국가들에 대한 영향력 증대를 꾀할 수 있게 됐다. NDB와 CRA는 또한 중국의 외환시장과 금융시장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중국이 오히려 걸림돌 될수도

브릭스는 2001년 만들어진 용어며, 2009년부터 5개국 정상들이 매년 만나 결속을 다지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발전속도가 너무 가파르고, 5개국의 국력격차가 벌어진 탓에 단결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08년 11%였다. 이는 오는 2018년 18%로 급등할 예상이다. 인도가 바짝 뒤를 좇고 있지만 2008년 4.8%에서 2018년 6.3%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브라질과 러시아의 비중은 3%대를 유지할 것이며, 남아공의 비중은 1%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 국가들의 처한 입장이 각각 다르기에 그동안 IMF, 세계은행 총재 선거가 있을 때마다 단일후보를 내는데 실패해 왔다. 무역문제를 가지고 서로간에 대립하는 경우도 많다. 중국과 인도는 국경분쟁이라는 잠재해 있는 갈등요소를 안고 있다. 때문에 브릭스 금융기구가 순항할 것인지에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캐나다 소재 국제거버넌스혁신센터(CIGI)의 메니코 롬바디 이사는 "브릭스 회원국들이 합의하지 못한 문제들이 많다"며 "브릭스가 NDB와 CRA 설립에 합의한 것은 IMF와 세계은행에 목 맬 필요가 없음을 보여주고 싶은 하나의 상징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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