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채열 기자 = “경주마 관상으로 원석 같은 경주마 발굴해 6000캐럿 다이아몬드(세계 최고 다이아몬드, 한화 250억)로 만들어냅니다.”
지난해 말 개봉한 송강호 주연의 영화 ‘관상’이 뜨거운 인기몰이를 했다. 한 천재관상가가 수양대군의 역모를 알게 되고 위태로운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그런데 사람에게만 관상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말도 생김새를 보고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 판별해 왔다. 이를 상마(相馬, 말의 생김새를 보고서 좋고 나쁨을 감정함)라고 한다. 뛰어난 말을 고를 때 혈통 다음으로 중요시되는 것이 말의 외모이기 때문이다.
한국마사회 렛츠런파크(구 부산경남경망공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영관 조교사는 현대판 백락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한국경마 최고의 경주마 관상쟁이로 손꼽힌다. 유독 뛰어난 경주마를 발굴하는 능력 탓에 한국경마 100년 역사의 내로라하는 서울경마공원 조교사들을 따돌리고 6년 연속 통합 상금왕(2007년~2013년)을 차지했다. 김영관 조교사는 6년간 527번이나 우승을 차지하며 벌어들인 금액만 250억 여 원에 달한다. 관상으로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원석 같은 경주마를 발굴해 보석으로 만들어내는 김 조교사의 탁월한 능력덕분이다.
김 조교사에게 명마의 조건을 물었다. 그는 “경주마는 혈통이 능력의 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다음으로 중요시되는 것이 말의 외모입니다. 즉 관상이죠. 뛰어난 경주마는 혈통은 기본이고 어깨가 튼튼하고 또 체형은 균형과 대칭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는 또 콧구멍은 넓고 커야 하며, 가슴은 두껍고 등은 짧고, 엉덩이는 둥그스름해야 한다는 등의 좋은 말상에 대해 설명했다.
김영관 조교사의 경주마 관상으로 성공한 사례는 절름발이 경주마 ‘루나’가 대표적이다. 부산경남경마공원 개장 초기에 활약했던 경주마 ‘루나’는 선천적인 장애로 인해 역대 최저가인 970만원에 낙찰됐다. ‘절름발이 경주마’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2005년, 2006년 경상남도지사배와 2007년 KRA컵 마일, 2008년 오너스컵 등 매년 억대의 상금이 걸린 큰 대회를 석권했다. 그렇게 해서 거둔 상금은 무려 7억2000만원. 몸값의 74배에 달하는 액수다. 2011년엔 루나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차태현 주연의 영화 ‘챔프’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1976년부터 기수 생활을 하다 체중 조절 실패로 마필관리사로 전향했다. 김영관 조교사는 서울 마필관리사 시절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자신만의 마필관리 노하우가 있었지만 조교사의 지시를 받아 일하는 관리사로는 자신만의 마필관리철학을 펴내기 어려웠다. 수차례 마찰을 빚어왔고 결국 미운털이 박힌 그는 외톨이가 되고 만다. 이른바 관리사 업계에서도 ‘루저’였던 셈.
하지만 2003년 부경경마가 개장을 앞두고 조교사로 개업, 자신만의 마필관리 노하우를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된다. 그 즈음 김영관 조교사는 운명처럼 ‘루나’라는 희대의 명마를 만난다. 그간 인정받지 못했던 설움을 한방에 날려 보내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조교사로 전향한 김씨에게 루나는 각별했다. 아픈 몸으로도 경주에 나서면 끝까지 달리는 루나의 의지는 김씨가 희망을 버릴 수 없게 했다. 김영관 조교사는 “다리가 너무 아파 눈물이 고일만큼 아파도, ‘루나’는 절대 중도포기 없이 어떻게든 결승선을 통과했다”며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고맙고 또 삶의 희망을 갖도록 했다”고 말했다. 경마계에 완벽주의자로 소문난 김영관 조교사지만 지금도 제주를 찾으면 남몰래 루나가 있는 목장을 찾아 남모르게 눈물을 흘리곤 한다고 한다.
이외에도 김영관 조교사의 마방에는 내로하는 거물급 경주마가 적지 않다. 2009년 삼관경주를 휩쓴 ‘상승일로’, ‘남도제압’, 지난해 대통령배와 그랑프리를 제패한 ‘인디밴드’, 최강 여왕마 ‘감동의바다’ 등 하나같이 걸출한 말이다. 한국경마 최다연승을 보유하고 있는 ‘미스터파크’도 김영관 조교사가 길러낸 경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