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인터뷰] 장진, 변화를 갈망하고 자기복제를 경계하는 감독과의 수다

2014-06-25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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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이힐>, 페이소스 짙은 액션과 웃음 ‘반가워’

[사진=남궁진웅 기자]

아주경제 홍종선 기자 = 6월24일 현재 이 영화를 본 관객 수 33만 8282명. 그들에게 묻고 싶다. 영화가 재미없었나, 설정이 불편했나, 주연배우와 배우들의 연기가 부족한가, 액션 시퀀스가 어색한가, 이야기 전개가 엉성한가?

여자가 되기를 꿈꾸는 현직 최강의 형사, 트렌스젠더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에 지레 불편함을 느껴서 혹은 188cm 장신 차승원의 여장이라니, 보기 전부터 낯설게 느껴져서 이 영화를 필수 관람 목록에서 지웠다면 아쉽다. 우려를 깨끗이 지울 만큼 차승원의 연기는 진정성 있고 설득력을 갖췄다. 오정세, 김응수, 안길강, 송영창, 이솜, 이엘, 이용녀, 조복래 등의 주․조연은 물론이고 박성웅, 김병옥, 이해영까지 우정출연 배우들마저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온전히 해냈다. 믿고 보는 감독 장진 연출답게 트렌스젠더 소재를 누와르라는 그릇에 담아내니 액션을 보는 재미도 있고, 심각하고 어렵지 않아 좋다.

최근 서울 팔판동 카페에서 장진 감독을 만나 아쉬운 흥행성적의 이유를 물었다. 그는 밖에서 원인을 찾지 않았고 남 탓도 없었다.

“어떤 얘기를 하고자 하는가를 떠나서 대중영화, 상업영화 안에 있다는 것은 관객이 영화에서 가져갈 수 있는 건강한 유익에 맞춰야 하는 겁니다. 결국 연출자인 제가 잘못한 거지요. 혹자는 아직 누와르라는 장르가 낯설다, 트렌스젠더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고도 얘기하시는데 제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전하고 있다면 저의 재능만 탓해야 해요. 영화의 진가가 대중에게 좀 더 편안하고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보다, 감독이 더 풀 수 있고 밀착시켰어야 했는데 못했나 보다 자성합니다.”

그래도 묻지 않을 수 없다. <하이힐>을 통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지욱의) 페이소스가 어떻게 전달될까 되게 궁금했어요. (지욱은) 대중적 기호 안에서, 보편적 시각에서 터부시 되는 어떤 영역이잖아요. 발언할 수 없고 자신의 진짜를 증명할 수 없는 분들의 얘기를 누와르라는 굉장히 오락적 장르 안에서라면(‘누와르가 교훈 주는 거 없잖아요, 나쁘게 살면 안 된다 대부분 그거죠’라는 설명을 곁들이며) 이런 얘기, 하기 쉽잖아요. 마지막 차승원의 눈빛으로 그는 운전해서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는데, 우리가 사는 세상 안에 저렇게 버젓이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아는데, 옆을 돌아보면 있는데, ‘우리는 왜 그를 열외라고 생각하는가’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사진=영화 '하이힐' 스틸컷]

실제로 <하이힐>은 ‘내 안의 그녀’를 세상 밖으로 내놓고 싶은 윤지욱의 감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 없이 가져가되 자연스럽게 액션과 유머가 휘감아 들며 촘촘하게 완성됐다. 특히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유머, 비애감을 잉태한 희극의 묘미가 쏠쏠하다. 차승원의 비장한 여장 연기에 혹은 뜻하지 않은 순간들에서 관객들은 웃는다. 배우들은 진지하게 정극 연기를 하지만 상황이 빚어내는 웃음과 페이소스다. 표정과 몸을 웃음의 도구로 삼는 영화와 달리,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위트’ 있는 코미디영화의 독보적 좌표를 보여 온 장진이 세상의 아이러니를 넘어 삶의 비애를 끌어안으며 한층 더 깊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웃음의 순간들을 불편하거나 생뚱맞지 않게 하는 것은 감독 장진이다. ‘장진이니까’ 의도된 연출로 읽혀 옆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웃을 수 있다. 스크린 위에서 차승원이 비애가 묻어나는 액션으로 날아다닌다면 장진은 영화 내내 <하이힐>의 모든 것을 내려다보며 들리지 않는 내레이션을 가슴으로 관객에게 전하며 메타적 시선으로 존재한다. 장진과 차승원의 절묘한 결합, 장진이어서 더욱 특별해지는 웃음, 놓치기 아까운 관람 경험이다. 장진은 정반대의 시각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렇게 보셨다면 저야 감사하죠. 하지만 때로 장진을 지우고 싶어요, 관객들이 장진 연출인 걸 모르고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보는 거죠. 연출로 열두 작품, 각본과 제작 등 여러 전적을 다 합하면 서른 작품, 이 정도 되니 장진이라는 감독에 대해 호, 불호가 양분화돼 있습니다. 어느 쪽도 영화 그대로를 보는 것에 방해가 된다는 게 제 입장이에요. 모르고 보면서 ‘이거 되게 웃긴다’ ‘장진 영화 보는 것 같아’라고 느끼신다면 더 기분 좋을 것 같아요.”

[사진=영화 '하이힐' 스틸컷]

인터뷰 내내 ‘이 사람에게는 어제가 없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제의 영광으로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오늘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으려 했고, 말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변화를 인정하고 달라지려 노력하며 살아 움직여 앞으로 가고 있었다. 부동, 정체라는 단어를 그에게서 찾기 어려웠다. 장 감독은 차승원을 끌어와 함께 얘기했다.

“차 배우랑은 바닥까지 아는 친구예요. 함께 일하다 보면 숨길 수가 없어요, 찔리는 상황이 나오죠. 일테면 제가 “(연기) 좋은데. 몰라, 나는 너무 자주 본 것 같아”라고 하거나, 차 배우가 “아니 재미는 있는데, 이거 <박수(칠 때 떠나라)> 때도 하지 않았어?” 하는 식이에요. 서로가 서로에 대해 민감하고 더 준비하게 되는 거죠, 긴장감 있는 관계예요. 그런 저희가 이번에 ‘질리게 찍어 보자, 한번’ 의기투합했어요. 영화를 보신 관객들이 ‘저 둘한테 무슨 일 있었나’ 생각해 주신다면 좋겠어요. 그도 나도 (배우와 감독으로서) 20년, 둘 다 관습적으로 하던 대로 할 수 있는데 쉽게 갈 수 있는데 ‘우리 그러지 말자’ 한 거죠. 타성에 젖을 수 있는 시점에서 서로 마음을 새로이 다잡을 수 있게끔 각오를 다졌어요.“

“상업적 득실을 떠나 그도 나도 이 공동 작업에 관련돼서는 그 어떤 때보다 치열하게 했다고 자부합니다. 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 ‘이게 기본이야’. 제가 중간에 잘못할 순간순간에 차 배우가 날 끌어 줬어요. 그 지점에서 고맙습니다. 저희뿐 아니라 관객도 나이가 들죠. 오랫동안 저희를 보신 분들이, (장진과 차승원이) 관습적인 지점 외에 또 다른 걸 가지고 있구나 하는 ‘반가움’을 느끼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죠. 어제와 우리와 차별화되는 다른 영역, 다른 깊이를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사진=남궁진웅 기자]

어제와 똑같기를 거부하는 남자들. 그것을 열정적으로 말하는 장진이 싱싱하게 느껴졌다. 장 감독은 계속해서 달라지는 자신과 관련해 우려도 있다며 가벼운 걱정거리를 꺼냈다. 그야말로 조금만 장진이라는 사람을 안다면 하지 않을 오해의 대목이었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사실 한 70%는 비슷한 질문들을 주시잖아요, 궁금한 것들이 겹칠 수밖에 없죠. 그런데 같은 질문에 대해 제가 1주일 전에 하는 답과 오늘 하는 답이 다를 수 있어요. 보기에 따라서는 말을 바꿨다거나 그때마다 하는 말이 다르다고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게 접니다. 저는 계속해서 변하고 싶고, 그래야 오래도록 관객 곁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50대 이상의 감독을 찾아보기 어려운 안타까운 현실, 30~40대가 볼 수 없는 걸 할 수 없는 방식으로 풀어낸 영화를 대중영화 테두리 안에서 계속 보이려면 흐르는 시간과 변화하는 관객 안에서 저도 흐르고 변화해야 합니다.”

장진에게 감독이 되는 이유를 묻자 “찾아가는 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감독이 된 걸 후회한 적이 있느냐 묻자 “가는 과정이라 아직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성공사례를 경계했다.

“지금, 오늘 무엇을 만들 수 있고 만들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봐요. 성공사례, 정확히 말해 성공사례를 좇는 일, 아주 위험합니다. ‘그렇게 하면 또 돼’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자신을 망치고 관객을 무시하는 일은 없다고 봅니다.”

변화를 갈망하고 자기복제를 거부하는 장진과 차승원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 <하이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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