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지난 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여자는 다 그래'(cosi fan tutt),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이 갈라 콘서트로 열렸다. '재미있다. 이런 오페라가 다 있네' 반응이 뜨거웠다.
'오페라는 어려운게 아니다'라며 문턱을 낮춘 라벨라 오페라단이 있다. 한해 30~40회 공연을 올리며 일반 대중들을 찾아나선다. 일년에 딱 한번, 외국배우들을 데려와 치고 빠지는 여타 오페라단과는 다른 모양새다. 올해도 11월까지 20회 공연이 잡혔다.
서울 서초동 라벨라오페라단 사무실에서 만난 라벨라 오페라단 이강호 단장(50)은 "오페라가 어렵고 지루하다는 것은 편견"이라고 했다.
2007년 5월 창단후 연 공연은 이제까지 실패가 없었다고 했다. "'오페라가 재미있네'라는 말을 들을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그동안 수많은 '잽'을 날려왔다. 연 1회 대형오페라 정기공연과 연 2회 소극장 오페라 공연에 이어 갈라콘서트, 가곡의 밤등을 열고 오페라와 성악의 문을 열었다.
"오페라는 정말 재미있는 것이고 약간의 공부만 있으면 누구나 재미있게 즐길수 있어요."
하지만 고급문화로 여기는 오페라는 부담스러운건 사실. 내용도 내용이지만 티켓은 다른 공연보다 훨씬 비싸다. 평균 R석은 22만~25만원선. 40만원짜리도 있다. 이유가 뭘까.
"비쌀수 밖에 없어요. 일단 규모가 비교가 안됩니다. 먼저 오케스트라가 있어야합니다. 최하 기준으로 하루저녁에 1200만원이 듭니다. 무대설치비만 1억원, 합창단원이 들어오면 3000만~4000만원. 거기다 극장 대관료가 7000만~8000만원이 기본입니다."
평균적으로 한회 공연에 2억5000만원이 드는 셈이다. 이 공연을 4번 무대에 올리면 10억원이 든다. 그런데 티켓은 50%도 안팔린다. 5억어치 판다고 쳐도 겨우 제작비를 건질수 있는 구조다.
"지난해 오페라 일트로바토레를 했을때 200명이 움직였어요. 인건비만 해도 엄청난 숫자죠. 오페라의 문제는 종합예술이긴 하지만 시간예술이라는 제약 때문이죠. 뮤지컬처럼 한달간 올릴수 있는 무대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이 단장은 "소극장 공연이 선결되어야한다"고 강조한다. “관객을 모을수만 있다면 가격을 낮출수 있어요. 유료관객을 늘려가야하죠. 70~80%만 되도 15만원까지 티켓값을 떨어뜨릴수 있어요. 그러기위해선 마니아를 많이 양성해야 합니다.그래서 일단 재미있는 오페라로 관객들을 포섭(?)하고 있는중이죠.하하”
창단후 소규모 극장에서 공연을 올리며 관객과 호흡했다. 하지만 오페라계 현실은 달랐다. 소극장에서 수많은 무대를 올려봐야 알아주지를 않았다. 일단 '한방'이 필요했다.
2012년 창단 5주년 기념으로 모차르트의 '돈 지오반니'로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로 입성했다. 제목은 익숙하지만 국내에서 6년만에 올린 이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날마다 비슷한 오페라 몇개를 가지고 뱅뱅거리고 있는 우리 오페라계의 신선한 충격'이라는 호평과 사설 오페라단의 무대라고 볼수 없는 웅장한 무대 스케일등 품격있는 무대로 화제가 됐다. 특히 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우리배우들을 캐스팅해 우리 성악가들의 수준높은 공연을 느낄수 있는 감동의 180분을 만들어냈다.
이후 예술의전당에서 대형공연은 이어졌고 라벨라오페라단 이름이 부각됐다. 전국의 오페라단은 120여곳. 한해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올리는 오페라단은 불과 10여군데다. 이런 측면에서 라벨라오페라단은 승승장구세다. 덕분에 라벨라 오페라단은 '부자'라는 소리도 듣는다.
역경은 있다. "지난해 일트로바토레 공연도 스폰이 없어 공연을 못 올릴뻔 했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죠." 공연을 앞두고 투자자가 연락이 안됐다. 지인에게 1억만 빌려달라고 했다. "지금은 5000만원밖에 없다"며 돈을 보내준 지인은 며칠후 아침에 다시 연락이 와 5000만원을 주면서 "더 못해줘서 미안하다" 고 말하는데 정말 가슴이 찡했다. 긍정적 감정은 전염된다. "이런 좋은 분들이 있어 공연을 지속할수 있고 감동을 나눌수 있는겁니다."
라벨라오페라단이 주목받는 이유가 있다. 공연만 하는게 아니다. 3년째 오페라학교를 운영하고 있고, 사회공헌으로 펼치는 콩쿠르도 올해로 6회째다. 우리 배우, 우리 성악가를 키우겠다는 목표다.
오페라 학교를 처음 추진할때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오디션을 보러오지 않더군요. 알고보니 장학금을 준다고 해놓고 나중에는 돈을 요구하는 일들이 많았거던거예요."
현재 라벨라오페라학교에 상근단원은 13명. 전액 장학생으로 가르친다. 학연지연 따지지 않는다. 오로지 실력만 있으면 된다. 혹독한 연습은 필수, 무대에 데뷔하면 개런티까지 지급한다. “음악 전공자들이 유학을 가서 힘들게 공부를 하고 와도 일자리를 얻기 힘든 것이 현실이죠. 해외에서 유명해도 우리나라에는 설 무대가 없어요."
열정의 도끼로 편견도 깨고 관행도 깬다. 하지만 스폰의 어려움은 숙제다. '기업의 문화 마케팅'에 쓴소리를 날렸다. "우리나라 기업은 외국배우가 무조건 들어가야합니다. 오페라에 대해 지식이 전무해 유명세만 따집니다. 그래서 40만원짜리 티켓이 팔리는거죠. "
국민소득 2만4000불. 아직도 문화 향유는 멀다. "내가 무슨 오페라를 봤어가 아니라 내가 40만원짜리 공연을 봤어"라는 허세문화수준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이제 패러다임을 바꾸야 합니다. 오페라도 문화컨텐츠로서 가치가 있어요"
창단한지 7년. 오페라계를 혁신하며 주목받고 있는 라벨라오페라단은 '따라 하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다. 본질(정통성)은 유지하되 껍질은 계속 바꾸는 차별화 전략이다. 남들이 하지 않는 공연을 제작, 현시대에 맞게 극에 따라 박진감 넘치고 재미있고 멋지게 연출해내는 게 특징이다. 디테일은 생명이다. 라벨라오페라단의 성공은 캐릭터 설정의 명확화와 피나는 연습에 있다.
"관객이 없으면 무대가 존재할수 없죠. 똑같은 걸 반복하며 우리 클래식을 안사준다고 불만을 터트리는데 오페라계도 변화해야 합니다." 이 단장은 "제대로 해서 제대로 된 감동을 줘야한다"면서 "우리나라도 오페라를 잘 할수 있다라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단장은 자신감이 넘쳤다. '감동을 주는 오페라'라는 명확한 꿈 때문이다. 돈을 바라지 않았다. "아직까지 주머니에 돈넣고 싶은 생각이 없다. 버는 것 다 투자한다. "저희 배우들이 자산입니다. 가수들이 노래하고 연기하는 무대를 넓혀주는게 제 일이죠. 배우들이 열심히 연습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앞으로 5년후면 오페라계에 SM이 될겁니다. 1000석 규모의 극장을 지을겁니다. 국립오페라단, 사설오페라단을 초청해 공연도 하고 민간 오페라단이 이렇게도 운영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