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인선 기자 =과거 13개 왕조의 수도로 중화민족의 영화를 함께 했던 시안(西安). 불교문화를 꽃피우며 문화도시로 이름을 날렸던 타이위안(太原). 항구도시로서 중국 양쯔강 최대 무역항인 장자강(張家港). 이 세 도시에는 중국의 영광과 아픔의 역사가 배어 있으며, 미래 일류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중국의 비전이 깃들여있다.
유구한 역사적 배경과 풍부한 관광자원에 더해 각각의 특색에 맞춰 경제 중심도시로 발전해가고 있는 이 세 도시는 중국의 미래발전상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의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가 전세계 10개국가에서 각각 1개 매체씩을 초청해 진행한 '아름다운 중국' 행사에서 세 도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상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이에 본지는 3회에 걸쳐 각 도시의 스토리를 소개해본다.[편집자주]
시안시가지 한복판에 들어서니 고풍스러운 거대한 성곽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시안고성이다. 당나라 성곽을 기초로 하여 명나라 때 다시 만들어졌다. 동서로 2.6km, 남북으로 4.2km로 성벽둘레가 13.6km에 달하니 자전거로 성곽 한 바퀴를 둘러보는 데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본래 당나라 장안성은 이보다 7배는 족히 컸다고 전해진다. 시안고성에서 내려다 본 시안시가지는 완전한 바둑판형으로 구획된 현대 계획도시를 방불케 했다. 현대화된 과학적 도시설계를 수천년 전 당나라는 이미 도입했던 것이다.
시안 북쪽에는 중국이 120억 위안(약 2조원)을 투자해 복원, 2010년 10월 개장한 당나라 시대 황궁 대명궁 유적도 있다. 대명궁은 당나라 때 장안성 3대 궁전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호화로워서 중국 궁전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과거 대명궁은 총면적 3.2㎢로 베이징 자금성의 4배, 루브르궁의 13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취재진이 방문한 산시성 시안은 진(秦)을 비롯해 서주(西周)와 서한(西漢)·수(隋)·당(唐) 등 중국 역사를 거쳐간 13개 왕조의 수도로서 1000년 이상 수도의 위상을 이어 내려오며 대당(大唐)제국의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었다.
중국의 수 천년의 역사 속에서 수 많은 왕조가 생성 소멸됐지만 그 중 당나라가 아마도 과거 중국이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때일 것이다. 당나라는 지금껏 중국 역사에서 가장 넓은 영토와 가장 풍요로운 삶은 누리고 찬란한 문화를 창조해냈다. 전 세계 화교들 사이에서 차이나타운이 ‘탕런제(唐人街 당나라 사람 거리)’라 불리는 것도 옛 당나라의 영예를 추억하기 위함일 것이다.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는 시에서“구중궁궐의 대문이 활짝 열리고, 모든 나라에서 의관을 갖추고 황제에게 절하네(萬國衣冠拜冕旒)”라고 장안성을 묘사했다. 당나라 시대 장안성은 세계의 사신과 상인들이 모여드는 중심 도시 역할을 했다. 서양에 로마가 있다면 동양에는 장안이 있었던 것이다. 비단·도자기·차·옥공예품이 모두 이곳에서 교류됐다. 이 값진 상품들을 구하려고 실크로드를 따라 서역 상인들이 이 도시로 줄지어 모여들었다. 아직도 시안에는 실크로드 상인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회교도 거리도 남아있다. 당나라 때 서역과 교류 당시 후손들이 모여 살면서 조성된 것이다.
▲ 대륙을 천하통일한 진시황의 주무대
시안은 중국 역사 속에서 중국 대륙의 분열의 역사를 끝내고 천하를 통일하여 강력한 대제국을 만들어 중국을 안정시킨 위업을 남긴 진나라 시황제의 주 무대이기도 했다. 진시황은 통일 제국 완성 후 지방군현제를 실시하고 동시에 만리장성을 쌓고 도로도 정비했다. 이는 훗날 장안이 국제도시로 발돋움하는데 뒷받침 역할을 했다.
진시황의 대표적인 유적은 병마용갱이다. 불로장생을 꿈꿨던 진시황제가 사후에 자신의 무덤을 지키려는 목적으로 만든 것으로 세계 8대 불가사의로 손꼽힐 만큼 거대한 규모와 정교함을 자랑한다.
지난 1974년 중국 시안 외곽의 시골마을에서 우물을 파기 위해 땅을 파던 농부에 의해 발견돼 본격적 발굴작업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총 25.380㎡에 달하는 4개의 갱이 발굴돼 현재 1,2,3호 갱이 대중에 개방된 상태다. 각 도용의 크기는 1.75~1.96m로 실제 병사 실물크기와 흡사하며 저마다 각기 다른 얼굴 표정을 짓고 있어 생동감이 넘친다. 본래 화려하게 채색됐던 도용들은 발굴과정에서 햇빛에 노출되자 불과 몇 시간만에 모두 색이 바래버렸다. 중국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향후 원형을 완벽하게 보존할 수 있는 기술이 갖춰질 때까지 발굴을 미룬다는 계획이다.
중국 역사 속에서 진시황은 통일 위업을 이룬 제왕임과 동시에 분서갱유를 일으켰고 과도한 토목공사를 시행해 민생 피폐의 폭정을 거듭한 것으로 기록된다.
특히 아방궁은 진시황이 과거 백성들을 착취해 건설한 초호화 사치 향락의 대명사로 진나라 멸망의 원인 제공을 한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한고조 유방이 진을 멸하면서 아방궁을 불태웠을 때 석달 동안 탔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을 뿐이다.
최근 시안시는 총 380억 위안(6조7000억원)을 들여 현대판 아방궁 복원사업을 추진했으나 중국 중앙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봉건 시대의 호화 궁전을 복원하는 것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강조하는 반부패 근검절약 운동 정신과 맞지 않다는 게 이유다. 오늘날 중국 지도자들은 진나라가 사치와 폭정으로 결국 일찍 멸망한 역사적 교훈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신 실크로드 경제벨트 중심지 도약
중국을 무대로 한 경제전쟁을 그린 조정래 장편소설 '정글만리'에서 시안은 '기회의 땅'으로 묘사된다. 좌천된 주인공이 중국 서부대개발 정책에 따라 시안에 가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 다시 일어설 발판을 마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서부대개발 전략에 따라 2009년 관중(關中)-톈수이(天水) 발전계획을 마련해 시안을 중국 주요 과학기술연구 허브로 선정한데 이어 올해엔 시안과 셴양(咸陽)을 함께 묶은 시셴(西咸)신구를 국가급 신구로 지정하는 등 시안을 서부대개발의 중심지로 삼고 있다. 덕분에 시안의 매년 경제성장률은 2011년 14.9%, 2012년 11.8%, 2013년 11.1% 등 경기 둔화 속에서도 매년 두 자릿수 증가율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엔 시안이 유라시아를 잇는 신실크로드 중심지로도 도약하고 있다.
지난 해 9월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시진핑 주석은 “2100년 역사를 가진 실크로드를 되살려 신 실크로드를 구축하자. 태평양에서 발트해까지 연결통로를 만들고 이를 동유럽과 서남아시아까지 확장해야 한다”는 신 실크로드 경제권 구상을 제시했다. 그리고 신 실크로드 경제벨트의 중심에는 과거 구 실크로드 중심지인 시안이 자리잡고 있다.
기회의 땅인 시안에 글로벌 다국적 기업의 투자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 삼성이 시안에 70억 달러를 들여 반도체 공장을 설립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 계기로 시안은 중국 IT산업 메카로 발전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이다.
시안시 여유국 관계자는 “삼성의 투자로 시안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며 “이미 60여개 삼성 협력사가 시안에 진출해 약 8000여명의 현지 고용 창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