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3년 동안의 준비와 신뢰 쌓기를 통해 1994년, 동국제강 노조는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회사는 걸프전 이후 유가급상승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졌고, 이에 따른 제품 재고가 늘어나던 시기였다. 이러한 때에 항구적 무파업 선언으로 힘을 보태준 구성원에게 회사에서는 사원아파트를 건립해 입주시키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원 복지 향상 및 지원으로 화답했다.
회사는 매월 임원단 회의인 ‘책임경영회의’나 각 사업장의 부서장급 회의에도 노조 간부의 참여를 장려하며 각종 경영 현안을 공유하고 함께 고민하는 전통을 세웠다. 더불어 성과에 대한 배분을 투명하고 철저히 하면서 상호 신뢰를 돈독히 했다.
최고경영자(CEO)가 포항, 인천, 당진, 부산의 지역 사업장을 방문할 때는 맨 먼저 노조사무실을 들리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잊지 않았다. 2012년 말 신임 사장이 된 남윤영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신임 사장으로서 발령받고 첫 업무를 시작하기 전날 그 역시 인천의 노조 사무실로 출근해 노조위원장을 만났다.
동국제강은 1990년대 중후반, 주력공장을 부산공장에서 포항제강소로 옮기며 봉형강류 위주의 사업구조를 후판 중심으로 전환하고 대규모 투자를 집행했는데 때마침 IMF 외환위기를 맞으며 부산공장 폐쇄와 인적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대두 되었고, 팀장급 이상 임직원들이 사표를 모아 장 회장에게 제출했다. 하지만 장 회장은 그들에게 호통을 치며, “반지를 팔아서라도 제대로 된 공장을 짓겠다. (여러분을)거리로 내 몰 수 없고, (인적 구조조정이 없다는)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말했다. 인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노사 합의를 지키기 위해 정리해고 없이 부산에 별도 사업장을 운영하도록 했다.
동국제강은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사업 구조조정이었음에도 인적 구조조정 없이 고용 안정을 이뤄냈고, 노조는 자발적인 임금 동결, 증산 운동 등으로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힘을 보탰다.
장 회장이 별세한 뒤 2000년부터 회장에 취임한 아들 장세주 회장도 아버지의 뜻을 따라 “언제나 업무의 최우선 순위는 임직원의 화합을 유지하고 인재를 육성하는데 있다”는 말로 자신의 경영방침의 핵심에는 노사관계가 있음을 재확인했다.
이러한 믿음 덕분에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전 세계가 공황에 빠졌던 2008년에는 개별 기업이 아닌 그룹 5개 계열사 노조가 임금 및 단체협약협상 전권을 회사에 위임하는 ‘일괄 노사협상’을 타결해 산업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2009년 때도 역시 노조가 자발적으로 임금을 동결해 사측의 부담을 덜었고 2013년에는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 공동 선언’을 통해 노조가 임금 위임과 함께 회사측에 전폭적인 신뢰로 불황타개의 힘을 보탰다.
올해도 노사화합의 전통은 이어졌다.
2014년은 특히 저성장, 공급과잉 등 열악한 경영환경과 통상임금을 둘러싼 노사 쟁점 현안이 쏟아져 나온 상황에서 노조는 임금동결과 임금체계개편의 대타협을 이루며 항구적 무파업 선언 20주년 이라는 노사상생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어 갈수 있었다.
장 회장은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한 1994년을 ‘제2의 창업’이라고 선언했다. 올해는 동국제강 창립 60주년을 맞는다. 내년 브라질 고로 일관제철소 완공을 앞둔 으로서는 ‘제3의 창업’이나 다름 없는 올해 또 다시 평화적 노사관계의 상징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앞으로 더 큰 도약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