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경제 안선영 기자 = 개성 강한 얼굴와 선 굵은 목소리를 지닌 배우 정경훈. 대중에게는 'CF계의 미친 존재감'으로 알려져 있다. 수십 편의 광고 촬영을 통해 인지도를 쌓아왔고 지금은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채우고 있다.
군인에서 모델과 배우, 그리고 연기 선생님으로 활동폭을 넓히고 있는 정경훈을 지난 15일 서울 충정로 아주경제 본사에서 만났다.
어렸을 때부터 제복에 대한 동경심이 있었던 정경훈은 어린 나이에 직업군인을 선택하게 됐다. "'군대를 왜 피하지?'라는 생각에 얼른 갔다. 입대가 결정된 후 '아버지, 저 군대 가요'라고 하니 입대통지서가 나온 줄 알았던 아버지는 '그래, 너도 언젠가는 가야지' 하시더라. 장교에 합격했다고 말씀드리니 그제야 당황스럽게 쳐다보셨다"고 회상했다.
제대 후 정경훈은 본격적으로 모델 활동을 시작했다. 런웨이에서 그가 워킹을 할 때면 쇼장이 시선이 모두 그에게로 쏠렸고 그런 매력은 연기에 대한 목마름으로 이어졌다. CF 촬영에 연기가 필요한 것은 기본이요, 모델이 몸으로만 표현한다면 드라마와 영화는 대사로도 이어지니 전율은 배가 됐다.
"CF 촬영 현장만 가면 감독님들이 '모델은 입만 열면 깬다'는 소리를 했어요. 나중에 저 말이 나에게도 해당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연기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작정 대학로로 가서 연기를 본격적으로 배웠어요. 뒤늦게 연기의 맛을 알고 나니 그야말로 미치겠더라고요, 연기에 푹 빠지게 된 거죠."
연기는 그에게 '즐거움' 그 자체였다. 그리고 즐기는 연기를 이길 자는 아무도 없었다. 정경훈은 영화 '알투비:리턴투베이스' '유감스러운 도시'와 드라마 '내여자' '학교 2013' '빠스껫볼' 등에 출연하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우연한 기회로 모델학과 교수를 맡게 된 정경훈은 연기 연습을 할 공간의 부재를 아쉬워하며 최근 서울 서초동에 연기학원까지 열게 됐다. "부산에서 연기만 바라보고 서울에 올라와 무작정 대학로 극단에 들어갔다. 하지만 막상 연기를 접하니 상업적 부분이 강조돼 아쉬운 부분이 많더라. 정말 즐기는 연기, 미쳐 살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고 싶다"고 목표를 전했다.

◇ 연기, 그에게는 놀이터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정경훈은 지금도 시간 비는 날에는 혼자 연기연습을 하며 자신을 단련한다. "소리도 질러보고 발성연습도 하면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만큼 연기를 좋아하고 잘하고 싶다"고 욕심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연기 강점으로 '정'을 꼽았다. 젠틀한 느낌 사이에 숨어있는 코미디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고 그만큼 연기에 신뢰를 얻게 하는 힘이 됐다. "입만 열만 깬다는 얘기도 많이 듣지만 그만큼 반전 매력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하하) 제게 '미친 존재감'이라는 표현은 아직 어울리지 않죠, 하지만 언젠가 저에게 딱 맞는 캐릭터를 만나 지금의 저를 뛰어넘을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수식어를 얻기 위해 열심히 해야죠."
정경훈은 "선과 악이 넘나드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자신의 연기 인생의 목표를 밝혔다. "평범하지 않은 역할을 하고 싶다. 순진한 사람이 뒤에서는 악행을 저지르는, 이중인격자가 매력적이더라. 대놓고 악역이 아니라 '저 사람 뭔가 있을 것 같은데?' 싶은 생각이 드는 연기가 탐난다"고 덧붙였다.
정경훈에게 연기는 '터널'이다. "들어갈 때는 쉽게 들어갔는데 막상 터널 안은 생각보다 어둡고 길다. 연기를 처음 접했을 때 내 마음이 그랬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하면 할수록 모르겠더라. 하지만 터널의 끝은 결국 햇빛이 비추는 밖이기에 험난한 연기의 길을 걸으면 밝은 날이 올 것"이라고 웃어 보였다.
쨍쨍한 햇빛을 보기 위해 터널 안에서 무던히 자신을 연마하는 정경훈.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