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좋은 봄날이다. 점심용 김밥을 사러 분식집에 갔다.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싸놓은 것을 봉지에 담아 준다. 오래 된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금방 싼 것이라며 걱정 말란다. 등산이다 야유회다 놀러 가는 사람들이 많아 싸 놓고 기다린 거란다. 그 사이 나눈 잠깐의 대화 내용이다.
아주머니는 등산 가는 것으로 여겨 물어왔고 난 아니라며 “농사지으러 간다”고 답했다. 돌아온 답이 의외다. “참 좋은 것 한다?”는 말에 잠시 당황했다. 일도 아니고 ‘좋은 것’이라고 말하며 ‘그럴 데’가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농사를 일이 아닌 ‘좋은 취미’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농사도 취미가 됐다.
주말이면 골프장에 쏘다니던 친구가 “골프도 안치고 무슨 재미로 사냐?”고 물을 때 “마당에 풀 뽑는 게 얼마나 재미난 일인데…”란 말을 종종 했었다. 그런 친구들이 나이 들면서 마당 있는 집을 짓고 풀도 뽑고 나무도 가꾸며 살고 싶어 주변을 배회한다. 하지만 김밥 집 아주머니 말처럼 ‘좋은 것’을 해보려니 ‘그럴 데’를 찾기가 쉽지 않다.
농지는 특별한 몇 가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놀리거나 임대하면 안 된다. 직접 농사를 지어야 한다. 어겼을 때는 강제매각을 당하거나 공시지가의 20%에 해당되는 이행강제금을 매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취미나 여가활동으로 농사짓는 사람들이 늘면서 몇 년 전부터 도시민도 세대별로 1000㎡ 미만의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됐다. 국가는 헌법의 ‘경자유전 원칙’을 흔들어서 도시민들이 ‘농사짓는 취미’를 도와주고 있다.
생명수단으로 한없이 엄숙해야 할 농지가 취미활동이나 여가용으로 가볍게 여겨지고 함부로 대해지는 것 같아 불편함은 있지만 방향은 그렇다. 좋은 아파트와 차, 골프회원권에 식상한 일부 도시 중산층들이 주말농장이나 주말주택을 찾아 나선다. 사람이 몰리다 보니 맞춤한 땅을 찾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경래 OK시골 대표 / www.oksig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