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적' 유준상 [사진=남궁진웅 기자]
아주경제 이예지 기자 = 배우 유준상은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뜨거운 심장을 가진 순정남부터 카리스마를 내뿜는 나쁜 남자까지, 상업영화로부터 예술영화에 이르기까지 장르와 캐릭터를 불문한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영화 '표적'(감독 창감독)에서 비리를 일삼는 희대의 악인 송 경감 역을 맡은 유준상은 눈빛부터 목소리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송 경감으로 물들였다. 그동안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었던 악랄한 눈빛이 특히나 인상적이다.
드라마와 영화, 뮤지컬 무대 진출에 음악적 소양을 드러낸 앨범 발매까지. 몸이 열두 개라도 모자란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그에게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왜 없었을까.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요? 여러 번 왔죠. 앞으로도 계속 지치겠죠. 연기를 위해 고민했던 것들을 빼곡히 적은 일기장이 아직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요. 뮤지컬을 할 때도 무대에 나가기 바로 직전까지 중얼거려요. '이렇게 어려운 걸 왜 하고 있지?'라고요."

'표적' 유준상 [사진=남궁진웅 기자]
실제로 뮤지컬 '잭 더 리퍼' 출연 당시 고비가 찾아왔다. '이번에 실수하면 그만두자'는 각오로 무대에 올랐다. 다행히도 수천 번의 연습과 노력 끝에 실수는 없었지만 종종 찾아오는 슬럼프에 괴로운 건 여전했다.
"제가 어느덧 데뷔 20년 차 더라고요. 하면 할수록 힘들고 어려운 게 연기이고 무대인 것 같아요. 관객이 제 연기를 보고 좋아하고 박수쳐 주시는 게 제일 힘이 나죠. 더 이상 극복해야 할 과제가 없다면 그건 배우 인생의 끝이 보인다는 소리 아니겠어요?"
유준상의 최근 고민은 대사를 잘 잊어버린다는 것. 재촬영이 가능한 드라마나 영화는 그나마 낫다. 실시간으로 시연되는 뮤지컬 무대에서 대사를 잊을 경우엔 난감하기 그지없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대사를 잊는 속도가 빨라지네요. 그렇게 많이 연습을 하는데도 잊어요. 그래서 찾은 방법이 공연 직전까지 연습을 하는 거예요. 남들이 보면 되게 열심히 한다고 하겠지만 사실 저는 안 잊어버리려고 하는 거예요, 하하."
유준상에게서 '도전'이라는 키워드를 삭제한다면 아마 그는 빛을 잃을지도 모른다. '표적'을 통해 다시 한 번 캐릭터 변신에 성공한 유준상은 전규환 감독의 '화가'와 이광국 감독의 '꿈보다 해몽'의 개봉도 앞두고 있다. 생애 처음으로 오토바이를 타기도 했고, 배를 가르고 창자를 꺼내는 하드코어 액션도 소화했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캐릭터다. 단지 몇 명의 관객만이 봐주더라도 의미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유준상. 그의 또 다른 변신이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