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승계와 마하경영, 계열사 구조개편 등 삼성의 최근 3대 이슈 모두에 대해 이 회장은 “이거다”라고 확정을 내리지 않았다. 이 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뗀지 오래됐고, 전문경영인을 중심으로 한 집단경영체제, 계열사간 독립경영체제가 뿌리를 내려 그룹 경영 전반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이 회장의 지침이 없다는 점에 있어서는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는게 사실이다. 삼성그룹으로서는 이러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전략이 다각도로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재용 부회장 중심 집단경영시스템 유력
그래서 이 회장은 후계 구도에 더욱 고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여전히 이에 대한 확실한 방안은 마련하지 못했다.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두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 등도 그룹경영의 최정점에서 뛰도록 했다. 이를 놓고 후계자 경쟁을 지속하고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상 이 회장은 세 자녀 모두에게 삼성을 각 부문별로 나누어 맡기려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설득을 얻고 있다.
이 회장이 총수로 취임했을 당시 1986년 기준 삼성그룹은 37개 계열사에 연간 매출액 14조6000억원, 직원 수는 15만여명이었다. 현재 삼성그룹은 지난해 기준으로 삼성그룹 77개 계열사 연간 매출액 390조원에 직원 수는 42만여명으로 성장했다. 이는 삼성그룹이 더 이상 총수 1인이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만큼 거대기업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회장이 최종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가능성은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다. 실제로 해외 출장 중이던 이 부회장은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11일 예정보다 빨리 귀국해 병원과 삼성서초센터를 오가며 그룹의 갖가지 현안을 처리하는 등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두 딸이 계열 분리 후 독립할 것이라고 보이진 않는다. 오너 일가와 전문경영인들이 함께하는 집단경영시스템의 강화가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이 회장이 추진하고 있는 ‘마하경영’과 ‘계열사 구조개편’은 이러한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의지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마하경영’·‘사업 구조개편’ 지연 될 듯
실시간 변화하는 시장 환경은 전자를 중심으로 수직계열화한 삼성그룹의 미래를 장담해 주지 못하고 있다. 이 회장은 일본의 거대 전자기업의 몰락을 목격했다. 하나의 업종에만 치중한 수직계열화보다는 다양한 사업을 융합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수직통합’이 삼성그룹에 맞는 변화라는 점을 직시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삼성의 변화를 위한 전략으로 ‘마하경영’, 실현 방안으로 ‘사업 구조개편’ 을 뽑아들었다. 에버랜드의 제일모직 패션사업 부문 인수, 삼성SDS의 삼성SNS 인수, 삼성SDI의 제일모직 인수, 삼성종합화학의 삼성석유화학 인수, 삼성생명 지분 정리, 삼성SDS의 상장추진 등 기 진행중인 작업들은 이 부회장과 이부진·이서현 두 사장이 ‘삼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각자의 역할을 맡는 식으로 사업부문간 분배 방식으로 후계 구도를 정리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삼성그룹은 마하경영과 사업구조 개편은 계획에 따라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기존 일정에 비해 다소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모든 작업은 임직원들이 진행하지만 최종 결정, 즉 화두를 던진 이 회장의 “고(Go)” 사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조율은 이 회장의 건강이 어떠냐에 따라 달려있다. 삼성그룹이 이 회장의 빠른 회복을 기원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