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수습하기 보다는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며 상급자에게 올릴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급급했던 이들의 모습은 공직사회에 대한 국민 불신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공직사회에 대한 개혁이 화두가 되는 가운데 경험과 전문성을 중시한 공무원 직급체계 구축 및 인사를 단행해야 한다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공직자들이 보여줬던 무능함을 국민이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경험은 뒷전, 고시천하 공직세계
이처럼 대다수 공직자들이 관행적 업무에만 매달리는 주요 원인은 우리 공직사회의 지나친 권위주의와 위계질서에 있다. 직급체계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반사기업의 경우 급변하는 사회 구조에 유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채용방식이나 직급에 있어 정해진 틀이 점차 깨지고 있다.
그러나 공직사회는 변화의 기미가 좀처럼 없다. 비록 학력에 있어 차별이 많이 없어졌다고 해도 공무원 채용제도와 직급 체계는 50년 전의 모습 그대로다.
출신이 미천하면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인정받고 위로 올라가기 힘든 상황 역시 변하지 않았다. 출발부터 5급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하는 고시 출신들과 달리 9급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들의 미래는 여전히 암담하기만 하다. 5급까지 승진하려면 통상 25~30년의 기간이 걸린다. 9급 공무원이 수많은 현장과 민원을 경험하면서 퇴직할 때까지 오를까 말까 한 5급 자리가 고시 출신에겐 처음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경험이 부족한 고시 출신들의 문제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가감없이 드러났다. 참사 당시 정부는 안전행정부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했지만 재난 문외한인 행정고시 출신 고위 공무원들이 지휘하면서 초기 대응에 실패해 많은 인명피해를 내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받고 있다. 가령 호주의 경우 안전 관련 부서에는 현장 경험이 있는 사람과 정책을 만드는 행정 공무원을 함께 배치한다.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면 올바른 대응전략이 나오지 않는다는 까닭에서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공직사회 내부에서도 이같은 비합리적인 인사체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정부부처 공무원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하위직 공무원에 대한 공무원 사회 내 차별이 사라져야 보다 제대로 된 행정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직사회 개혁, 성공할까?
박근혜 대통령이 공직사회 개혁을 천명한 것도 이 같은 배경이 깔려 있다. 공직사회가 그동안 폐쇄적인 채용구조 속에서 순환보직 시스템에 따라서 여러 보직을 거치다 보니 전문성이 부족한 일반 관료만 양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공직사회가 그동안 폐쇄적인 채용구조 속에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해 부처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특정 고교와 대학은 물론, 고시 출신이 구축한 카르텔을 과감히 깨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은 다음 주 중 여객선 ‘세월호’ 침몰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통해 구체적인 공직사회 개혁의 청사진을 내놓을 예정이다. 공무원 임용방식과 보직관리, 근무평가 및 보상에 이르는 인사시스템을 전면 개선함으로써 정부 부처와 유관단체·기관의 오랜 유착관계와 그로 인한 병폐 등 이른바 ‘관(官)피아(관료+마피아)’ 논란을 해소하겠다는 게 이번 담화의 핵심 내용이 될 전망이다.
소방·안전·재난 등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의 공무원은 일반 공무원과 별도로 선발토록 하거나, 감독기관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공무원의 유관단체·기관 재취업 관행을 차단키 위해 관계 법령 등을 정비하는 등의 방안이 거론된다.
이를 위해 청와대는 공직사회 개혁에 필요한 각종 과제 추진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 등의 별도 조직을 만드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성공 가능성에 대한 여부는 불투명하다. 역대 정부 역시 '공직 개혁'을 수없이 외쳤건만 번번히 수포로 돌아갔던 바 있다. 그만큼 공무원의 보신주의, 무사안일 문화를 바꾸는 것은 어렵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제도 개혁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치겠지만 급선무는 공무원 스스로 인식을 바꾸는 것 외엔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