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기관 및 관련업계 전반에 전직 고위 관료들이 포진돼 있는 만큼 이들에 대한 정부의 감독·견제 기능은 사실상 유명무실하지 않느냐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번 세월호 대참사를 비롯해 원전 등 각종 사고위험이 전면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때문에 이들은 차제에 공직사회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뒤따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직관료는 협회·공사 등 공공기관과 사기업 등에서 수억원의 연봉과 퇴직후의 생활을 보장받는 대신 현직 고위관료 및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로비스트’역할을 수행한다. 현직관료는 자신의 퇴임후 생활을 감안해 전직관료의 로비에 귀를 기울이는 '유착' 관계가 자연스레 형성되기 마련이다.
정부는 민관 유착에 대한 해묵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마다 '공공기관 선진화' 등을 외치고 있지만, 민관의 고리를 쉽게 끊어지지 않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27일 정부 중앙부처와 협회,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사업자 중심의 각종 이익단체에는 중앙부처와 처, 청 출신의 전직관료 수백명이 활동하고 있다.
'낙하산 인사' 논란으로 공기업으로의 진출이 제약을 받자 협회 등으로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추세다.
해수부 출신의 경우 산하 공공기관 및 단체 14곳중 11곳에서 기관장을 맡고 있다. 이번에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된 한국선급, 한국해운조합 등 유관기관장 자리도 이들이 꿰차고 있다. 선박의 안전 운항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해운조합도 역대 이사장 12명 중 10명이 해수부 고위 관료 출신이었다.
이른바 '해피아(해수부+마피아)'가 보안공사 사장 등의 자리를 제외한 사실상 모든 자리를 독식하고 있는 셈이다.
해피아 뿐만 아니라 '산피아(산업부)', 모피아(기재부), 금피아(금융감독원), 국피아(국토부)등의 민관 유착관계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현직 후배공무원 상대로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로비스트'에 가까운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단체가 수백개에 달하는 산업부가 대표적이다. 회장, 부회장, 사무총장, 전무 등으로 활동하는 주요임원만도 대한상공회의소, 자동차산업협회 등 58곳에 이른다.
산업부가 인증권한을 준 민간인증기관 10곳에는 모두 이 부처 출신들이 회장, 원장, 부위원장, 부원장 등 주요보직을 꿰차고 있다. 출신 직위도 사무관에서 1급까지 다양하다.
안현호 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은 지식경제부(현 산자부) 1차관,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 부회장은 지경부 무역투자실장 출신이다. 서영주 조선해양플랜트협회 부회장과 김경수 디스플레이산업협회 부회장 역시 산자부 고위 공무원 출신이다.
한국금융투자협회는 사업자단체임에도 업무질서 유지 및 투자자보호, 장외시장 관리, 분쟁자율 조정 등 투자자와 관련된 자율규제를 수행한다. 기획재정부와 금융감독원 출신이 상근부회장과 자율규제위원장을 맡고 있다.
은행연합회, 손해보험협회, 생명보험협회, 화재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저축은행중앙회 등 금융계 사업자단체는 기재부와 금융위, 금감원 출신이 주요보직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건설업계 사업자단체에는 7명의 전직 국토교통부 출신이 활동 중이다.
정일영 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은 국토해양부(현 국토부) 교통정책실장 출신, 최재덕 해외건설협회 회장은 건설교통부(현 국토부) 차관, 서종대 한국감정원 원장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차장을 지냈다.
제약업계와 식품업계의 협회는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출신 관료들의 몫이다.
이처럼 전직관료들이 관련업계, 공기업 등에 대거포진되면서 현직관료들과 유착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관리·감독해야 하는 정부기능은 '서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제기능을 할 수 없는 구조이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협회 같은 곳에는 규제가 없고 알짜 자리가 많다"며 "정부가 창이라면 퇴직관료는 방패역할을 한다. 협회 등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태원 새누리당 의원은 "해피아, 국피아, 모피아, 산피아 등 관료들은 저마다 해당 분야에서 철밥통 지키기와 전관예우 관행을 통해 자신의 배를 채워왔다"며 "세월호 참사는 선박 운항과 선사 운영, 안전 관리, 부처 감독, 구조 중 어느 한 단계에서만 제대로 시스템이 작동했다면 끔찍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