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치연ㆍ이재영 기자 = 삼성전자가 ‘마하경영’이라는 기치에 걸맞게 파격적인 계열사 구조 재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삼성SDI와 제일모직의 합병을 공표한 이후 불과 이틀 만에 다시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의 합병을 결의한 것이다.
양사 모두 중국 수출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실적이 주춤했던 만큼 빠른 합병 결정은 신속하고 과감한 대응전략으로 읽힌다. 여전히 사업 연관성은 높지만 따로 분산돼 있는 계열사들이 많은 만큼 추가 합병도 예상 가능하다. 실적이 부진하거나 합병의 시너지가 큰 화학, 전자 계열사들이 주요 대상이 될 전망이다.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이 각각 1대2.1441의 비율로 합병하며, 삼성종합화학이 신주를 발행해 삼성석유화학의 주식과 교환하는 흡수합병하는 방식이다. 합병회사의 사명은 '삼성종합화학'이며, 양사는 오는 18일 주주총회의 승인을 거쳐 6월 1일까지 합병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번 합병을 통해 삼성종합화학은 삼성석유화학의 중간 화학제품 사업과 자회사인 삼성토탈의 기초화학제품 및 에너지사업 간의 유기적인 가치사슬을 구축, 강화해 기존사업의 안정성 확보는 물론 장기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손석원 삼성종합화학 사장은 "종합화학과 석유화학 양사의 일치된 성장전략의 일환으로 합병을 추진하게 됐으며, 이를 통해 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정유성 삼성석유화학 사장은 "석유화학이 40년간 축적해 온 기술 역량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종합화학과의 사업시너지를 통해 미래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종합화학회사로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삼성SDI도 제일모직을 흡수합병해 자산 15조 원대의 거대 기업으로 거듭나게 됐다. 합병을 결의하면서 '글로벌 초일류 소재·에너지 토털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비전도 내세웠다.
이번 합병을 통해 삼성은 부품 전문기업(삼성SDI)과 소재 전문기업(제일모직) 간의 역량이 합해져 큰 시너지가 날 것으로 기대한다.
◆ 이재용ㆍ이부진 3세 승계 '미궁'
한편, 삼성그룹 계열사 간 합병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사업구조 재편 외에 3세 승계와 연관된 다른 목적의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린다. 순환출자 지분구조가 얽히면서 3세 구도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는 연관 사업 계열사 간 구조재편이 아직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어 지분구조도 계속 바뀔 가능성이 높지만, 최근 흐름으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간의 관할 사업권이 겹치면서 남매의 승계 구도에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우선 삼성석유화학의 지분을 갖고 있는 제일모직이 삼성SDI에 흡수합병되면서 이부진 사장이 대주주(33.2%)로 있는 삼성석유화학에 대한 이재용 부회장의 영향력이 커졌다. 삼성SDI는 삼성전자가 20.38%의 대주주이고, 삼성전자는 3세 중 유일하게 이재용 부회장만이 0.57%의 지분을 갖고 있어서다.
여기에 다시 삼성석유화학이 삼성종합화학으로 흡수합병되면 이재용 부회장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삼성종합화학은 삼성물산(38.68%), 삼성테크윈(26.47%), 삼성SDI(10.66%) 등이 1~3대 주주로 있고 삼성테크윈은 삼성전자(25.46%)가 최대주주이다. 또 삼성물산의 경우 삼성SDI(7.18%)가 대주주이다. 이에 따라 삼성석유화학의 최대주주인 이부진 사장은 합병법인의 6대 주주로 내려간다.
그동안 재계 일각에서는 이부진 사장이 호텔사업과 건설ㆍ중화학 사업을 이을 것이란 추측설이 나돌았으나, 이재용 부회장과 지분 구조가 얽히면서 당장에는 그러한 구도가 흐려졌다.
삼성물산은 이러한 지분 구도의 또 다른 관심사로 급부상 중이다. 삼성SDI가 지난해 삼성엔지니어링의 지분을 삼성물산에 매각하면서 그룹 내 비중이 높아졌다. 여기에 제일모직이 보유한 삼성엔지니어링 지분도 삼성물산 쪽으로 이동해 건설부문 최상위 계열사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에 따라 이부진 사장이 건설 부문을 승계하는 데 삼성물산이 관건이 될 것이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