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일본 기업은 엔저효과를 수출 확대로 돌리기보다 그동안 줄었던 수익을 만회하는 데 사용했다. 때문에 어느 정도 수익을 챙긴 일본기업들이 엔저를 앞세워 수출경쟁을 본격화할 가능성이 도사린다. 지난해 한국 반도체가 일본을 제쳤다고 방심해선 안 되는 이유다.
엔화 약세가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을 제고시켜 수출 증가와 무역수지 개선을 가져올 것이라는 당초 기대와 달리 일본의 무역수지는 엔저 이후 오히려 적자규모가 확대됐다. 2000년대 들어와 전자산업을 중심으로 일본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된 데다 대중국 수출 부진이 엔저 효과를 떨어뜨린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엔화가치는 20% 이상 하락했지만 일본의 석유제품과 통신기기를 제외한 주력품목 대부분의 수출은 감소했다. 특히 TV, 디스플레이, 휴대전화 등 일본 전자산업의 부진은 이와 연관된 일본 반도체 기업들의 연쇄 부진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반도체 국제가격 상승에도 일본의 반도체 수출은 오히려 13%나 감소해 12.7% 증가한 한국과 대비됐다.
일본기업의 해외진출 증가로 일본 제조업의 해외생산 비율은 2001년 24.6%에서 2007년 30.6%, 2013년 34.6%로 계속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2016년에는 38.6%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업종별로는 특히 자동차와 함께 전기전자가 해외생산 비율이 40% 이상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며 그 결과 이들 업종에서 엔저의 영향이 과거에 비해 축소됐다. 일본은 또한 해외진출 시 부품업체도 동반 진출함으로써 전자부품 수출이 감소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의 전자산업 발전도 전자부품 경쟁력이 약화된 일본의 중국시장 점유율을 꾸준히 떨어뜨리고 있다. 일본 수출의 18% 정도를 차지하는 중국시장의 교역환경 변화가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토 분쟁 등으로 인한 중국의 반일 감정도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으로 확산돼 일본 수출에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지난해 1~3분기 중 엔화환율은 전년 동기 대비 21.7% 상승했으나, 달러표시 수출 단가 인하율은 8.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본업체들이 수출가격 하락을 통한 시장점유율 확대보다 이익 증가와 경영체질 개선에 더 중점을 두고 있음을 방증한다. 따라서 엔저에 힘입은 일본 기업의 이익 증가가 지속될 경우 시장점유율을 늘리기 위한 수출가격 인하폭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LG경제연구원은 “엔저가 지속될수록 환율 변화를 기업 단가전략에 반영하는 일본 기업의 비중이 높아져 한국 수출에 미칠 엔저 영향도 커질 가능성이 대두된다”며 “올해 중 그 효과가 뚜렷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