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주인없는 기업으로 10여년을 지내온 SK하이닉스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빠른 시일 안에 ‘SK’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돼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연 매출 10조원을 넘는 SK하이닉스는 인수 후 별다른 잡음 없이 물리적·화학적 융합돼 그룹의 새로운 수익 창출원으로 부상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내다 본 최태원 회장의 결정이 정확히 들어맞았던 것이다.
SK그룹이 최태원 회장의 경영일선 퇴진 이후 그룹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오는 21일 열리는 SK그룹 주요 상장사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최태원 회장은 사내이사직을 사퇴한다. 이로 인해 기 수립한 신성장사업 투자 집행은 물론이거니와 그룹의 전략인 M&A의 추진도 사실상 중단된 상태라고 한다.
SK그룹의 한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이 구속되기 전인 지난 2010년 SK그룹은 신에너지와 스마트 환경, 혁신 기술 등 3대 신사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 계획과 더불어 M&A를 통한 조기 사업화도 별도 고려돼 있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사업을 어디로 진출해야 할지 방향도 잡지 못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SK그룹의 역사는 인수·합병(M&A)을 통한 성장으로 대변된다. 1956년 그룹 창업주인 최종건 회장이 해방 이후 정부에 귀속됐던 선경직물(현 SK네트웍스)을 인수하며 출발한 SK그룹은 동생 최종현 회장이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 현 SK(주))를 인수하면서 에너지그룹으로 변신했고, 그의 아들 최태원 회장은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에 성공해 그룹 사업영영을 정보통신기술(ICT)로 영역을 넓혔다. 17년 후에는 SK하이닉스를 품에 안음으로써 전자 소재 사업으로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SK그룹이 M&A의 귀재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오너의 결정이 적시에 빠르게 이뤄졌다는 것이 첫째요, 인수 후 통합 과정(PMI)에 있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것이 두 번째다. 공기업이었던 유공과 한국이동통신 임직원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새로운 도약을 이뤄냈고, 경험이 전무 했던 반도체(SK하이닉스) 사업 운용을 무리 없이 진행하고 있는 것도 M&A 이후 관리·운용의 묘를 발휘한 SK그룹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SK그룹에게 있어 M&A는 그룹의 신규 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경영 기법이기 때문에 신사업 발굴과 개척에 있어서도 가장 많이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SK그룹이 M&A로 이뤄낸 그룹의 포트폴리오, 즉 에너지와 정보통신, 반도체는 타 사업에 비해 많은 수익 창출이 가능하지만 해가 갈수록 수익 규모는 줄어들고 있다. 누구보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SK그룹은 포트폴리오의 외연을 확대해야 할지, 전혀 새로운 신규 사업에 진출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어떤 결정을 내리건 간에 SK그룹이 추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중 하나는 바로 M&A다. M&A는 기업에게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에 오너의 입김이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며, “현 사업의 유지는 전문경영인이 할 수 있다. 최태원 회장의 공백으로 SK그룹이 느끼는 진짜 위기는 M&A의 중단으로 새로운 미래 선점의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