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카와 료조 도쿄대 대학원 경제학연구과 특임연구원은 니혼게이자이신문에서 최근 게재한 자신의 기고문을 통해 삼성전자의 대규모 ‘다품종 소량 생산’의 특징을 이렇게 요약했다.
요시카와 특임연구원은 히타치제작소, NKK(현 JFE 홀딩스) 등에서 컴퓨터이용설계·제조(CAD·CAM) 시스템 개발을 담당했으며, 삼성의 요청으로 지난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삼성전자에서 개발혁신 업무를 추진했다.
그는 글을 통해 일본 전자 대기업과 애플 등 경쟁업체와의 피나는 전쟁에서 삼성전자가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삼성전자만의 독특한 제품 개발 프로세스를 꼽았다.
삼성전자는 세계시장 1위를 점유하고 있는 평판TV를 매년 평균 5000만대, 스마트폰을 포함한 휴대폰은 3억대 이상 출하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같은 기종을 대량생산해 가격을 낮춤으로써 점유율을 늘린다”는 제조업의 전통적인 전략을 따르지 않는다. 평면TV만 놓고 봐도 삼성전자는 매년 1000~1500종의 신 모델을 투입하고 있다. 하루에 평균 3~4종의 새 모델이 탄생하는 셈이다. 연간 출시 모델 수가 두 자리 내외인 일본 전자업체와 애플 등과는 근본적으로 전략이 다르다. 이 속에 대량생산체제를 갖춘 삼성전자가 ‘다품종 소량생산’을 취하면서도 가격을 낮춰 이익을 낼 수 있는 비결이 숨어있다.
일본기업은 신제품을 개발할 때 하나 하나의 제품마다 해당 제품에서 요구되는 기능을 먼저 생각하고 비용 및 품질 제약조건을 감안해 설계하는 방식을 취한다. 반면 삼성전자는 일본 기업이 중요시 하는 기초 연구와 생산기술 자체에 매달리기 보다는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에 어떻게 신속하게 제공하는 지에 중점을 둔다. 일본의 개발 시스템을 ‘포워드 엔지니어링’이라고 부른다면 삼성전자는 ‘리버스형 엔지니어링’이라고 칭한다.
삼성전자는 제품 개발 단계에서 완제품이라는 공통된 큰 틀(플랫폼)을 두고 여기에 적용할 기능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시장 별로 그 기능이 왜 설치되어야 하는지, 소비자가 진정 이 기능을 필요하는 지를 놓고 조사한 뒤 더할 건 더하고 뺄 제거할 것은 제거함으로써 다양한 ‘솔루션’(파생모델)을 만든다. 이 단계에서는 기술 못지않게 목표시장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문화적 인식이 개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인도에서 히트를 친 잠금장치 냉장고, 와인잔을 모티브로 한 ‘보르도TV’는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탄생했다.
이는 일본식 메밀국수(소바)와 우동을 파는 가게에서 국물과 면은 미리 준비한 뒤 고객의 주문에 맞춰 튀김을 넣으면 튀김을 넣으면 튀김우동, 튀김소바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요시카와 특임연구원은 일반적으로 ‘리버스’는 선행제품을 분해해 이를 모방하는 과정으로 해석되지만 ‘리버스 엔지니어링’은 흉내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중국업체는 머그컵을 만들 때 손잡이가 붙어있는 것은 알아도 그것이 왜 붙어있는지 몰랐다. 따라서 저렴한 재료를 선택해 외형만 동일한 ‘짝퉁’을 만든다.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이용하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기술을 결합해 다양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부품도 자체 개발 대신 범용 제품을 결합해 단기간에 저비용으로 완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제조업체가 직면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솔루션이 될 수 있다. 소비자가 요구하는 신제품 교체 주기가 갈수록 빨라지면서 제조업체들은 제품 개발에 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기간을 단축하면서 품질은 최고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더군다나 인도 소비자와 중국 소비자, 미국 소비자, 유럽 소비자들 각각 제품에 대한 선호 기능이 다르다.
이런 상황을 포워드 엔지니어링으로 대응하려던 일본 전자업체는 삼성전자와의 제품 경쟁이 아닌 중국 업체들과의 가격경쟁에 휘말려 사업이 위축되거나 철수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렸다. 하지만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활용한 삼성전자는 오히려 시장 장악력을 높이면서 큰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요시카와 특임연구원은 “글로벌 시장에서는 고객이 원하는 다양한 제품을 빠르고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더 많은 요구에 신속하게 부응해 수익률을 높여갈 수 있다”며, “기술적으로 후발주자라도 삼성전자와 같이 다품종 소량생산을 통해 이익을 낼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면 경쟁 면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