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공동취재단(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형제는 눈물만 흘렸다. 40년 전 백령도 부근에서 납치돼 북으로 끌려간 수원 33호의 선원이자 동생인 최영철씨(당시 21, 현재 61)를 만난 우리측 상봉단 최선득씨(71)는 흐르는 눈물앞에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 첫날 단체상봉행사에 이들 최씨 형제들을 비롯 전시납북자 2명이 가족 상봉에 나왔다.
최영철 씨는 이날 상봉에서 나이가 10살이나 많은 맏형 선득 씨를 만나 분단과 헤어짐의 아픔을 달랬다.
선득씨는 동생에게 남쪽의 두 형과 세 여동생, 그리고 조카의 소식을 전했고 영철 씨는 북한에서 결혼한 부인 박순화(60)씨를 형에게 소개했다.
이날 상봉에서 둘째 형 영득(72)씨의 장남인 조카 최용성(43)씨가 생면부지의 삼촌에게 작년 추석에 쓴 장문의 편지도 전달했다.
용성씨는 편지에서 남쪽의 추석표정과 가족 전체를 일일이 소개하고 "우리 모든 가족들은 작은 아버님의 모습과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며 "항상 복된 생애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선득 씨는 상봉에 앞서 19일 가진 사전인터뷰에서 "당시 외양어선을 타면 돈이 좀 됐고 고등학교는 당시 생활로는 가기가 힘들어서 갈 생각을 못했는데, 딴에는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학교 갈 생각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는 "(동생이) 3번 배탔고 4번째 탔는데 그때 사건이 났다. 이후 정부에서 납북자 가족이라고 무슨 불이익을 주고 그런건 없었다"면서도 "한번씩 우리 모르게 우리가 어떻게 생활하는지는 확인하고 그랬던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 씨는 동생이 어떤 모습이길 기대하냐는 질문에 "듣기로, 북에서 못먹고 그래서 보기 흉한 사람은 내보내지 않는다더라"며 "그러니 동생이 어느 정도 잘 살고 있었던 것 아닌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납북선원 박양수 씨도 동생 양곤씨를 만났다. 박 씨의 부모와 큰 형은 모두 사망했다.
양곤 씨는 42년 만에 만난 형을 꼭 끌어안으며 "고맙습니다. 얼굴을 뵙게 해주셔서…"라며 격해진 감정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이날 상봉에 앞서 19일 가진 사전인터뷰에서 "형은 생업에 도움이 될까 하고 어린 나이에 떼밀려서 배를 타러 간 것"이라며 "우리 국민들은 정치의 영향을 안받을 수는 없는 것이고 (형이 납북되고나서) 좀 힘들었다"고 말했다.
양곤 씨는 형에게 남쪽 소식을 생생히 전하기 위해 돌아가신 부모님과 큰형의 묘소 사진, 가족 사진, 고향마을 풍경 사진을 챙겼고 내복 등 의류와 생활필수품을 선물로 준비했다.
정부에 의해 전시납북자로 인정된 북한의 최종석(93)씨와 최흥식(87)씨도 이번 상봉대상에 포함됐으나 모두 사망해 각각 남쪽의 딸 최남순(65)씨와 아들 최병관(68)씨가 북쪽의 이복형제와 만나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전해들었다.
납북선원 박양수 씨는 박 씨를 포함한 쌍끌이 어선 오대양 61호, 62호의 선원 25명은 1972년 12월28일 서해상에서 홍어잡이를 하던 중 납북됐고, 최 씨가 탔던 수원 32호와 33호도 백령도 인근에서 홍어잡이를 하다가 북한 해군의 함포 사격을 받고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납북됐던 오대양호 선원 전욱표(69)씨는 북한을 탈출해 작년 9월 국내에 들어오기도 했다.
이날 상봉에서는 남측 이산가족 12명이 부부·자식, 47명이 형제·자매, 23명이 3촌 이상 친지를 각각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