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30일, 전주 전북대학교에서 열린 ‘열정樂(락)서 시즌5’에서 강연자로 나선 우남성 삼성전자 사장(DS사업총괄 시스템 LSI사업부장)은 참석자들에게 ‘시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 사장은 삼성그룹 내에서 소위 말하는 ‘S급 인재’로 분류된다. 미국 AT&T와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 재직하던 그를 2003년 영입했다. 그는 메모리 반도체 치중했던 삼성전자가 시스템 LSI라는 신사업을 성공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43만명에 달하는 삼성 전체 임직원 중 석ㆍ박사 인력은 3만명(박사급 6000여명)에 달한다. 직원 14명당 1명이 석사 이상 고급 인력이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인재천국이다.
잘난 사람보다 삼성에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은 삼성의 끊임없는 관심거리다. 삼성은 고급인력 영입을 위해 엄청난 투자를 단행했다. 1988년경부터 미국 구 소비에트 연방(현 CIS), 중국 등을 돌며 박사를 뽑았는데, 이 시기에는 1년에 100명씩 박사를 뽑았다. 당시에는 인재풀을 확보하기 위해 담당 임직원들이 미국 출장만 1년에 4차례를 다녀왔다고 한다. 한 번 출장을 가면 미국 전 지역의 대학이란 대학을 다 돌았고, 안테나에 잡힌 인재들은 직접 만나 삼성 입사를 권유했다. 한국 유학생 중 유능한 박사를 뽑았는데 그 때 입사한 사람들이 지금의 삼성전자를 이끌고 있다.
바로 입사한 사람도 있지만 “조금만 기다려달라”, “부인이 반대한다”, “애들 교육 해야 한다”며 미루다 20년이 지난 후에 삼성에 합류한 사람들도 많다. 이런 일이 가능한 배경은 삼성이 필요하다고 싶은 인재는 계속 관리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사보가 발간되면 사보를 보내고, 명절 때마다 선물을 보내고, 틈틈이 회사에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알려주고. 이렇게 사람 한사람에게 열과 성을 다했다. 유비는 제갈량을 얻기 위해 ‘삼고초려’(三顧草廬)를 마다치 않았다고 하는데, 삼성은 한 사람을 뽑기 위해 20년 동안 관리할 만큼 열정을 보인다.
인재들을 모아놓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1982년 국내 기업으로는 최초로 기업연수원을 개설한 삼성은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10개 연수원을 갖추고 있다. 연수원을 통해 최고경영자(CEO)에서부터 말단사원에게 끊임없이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초 단위로 바뀌는 기술과 시장 상황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교육만이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크라이슬러가 방한 때 삼성연수원을 보고 깜짝 놀랐고, 1964년 삼성전자 설립 당시 기술지원을 해준 산요전기 회장 등이 한국에 초청했을 때 연수원 교육장면을 보고 “우리가 진 이유를 알겠다”며 그 이유는 인재양성, 교육 때문이라 말하기도 했다.
우 사장이 말하는 ‘새로운 시선’을 갖춘 인재는 ‘추적자’(First Follower)에서 ‘선도자’(First Mover)로 나가가 위한 삼성에 있어 가장 필요한 인재상을 한 마디로 축약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경영 전반에 걸쳐서 여성인력을 활용해야 한다. 욕심 같아서는 6대 4 정도를 가져가도 좋지만 7대 3 정도는 갖고 가야 한다”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말은 불합리한 차별을 철폐한 열린 인사로 성, 학력, 출신 지역에 관계없이 전문성이 있는 특이인재를 확보함으로써 창의적인 조직역량을 촉진해야 함을 뜻한다.
새로운 시각과 실행력, 실행력을 이끌어내는 리더십, 융합과 복합을 위한 커뮤니케이션과 팀워크, 창의력과 도전적인 정신을 갖춘 인재가 필요한 삼성은 고민 끝에 총장 추천제를 골자로 한 채용계획 개편안을 내놓았지만, 대학 서열화와 지역 차별이라는 뜻하지 않았던 저항에 좌초되고 말았다.
이인용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은 “총장추천제의 취지는 대학에서 특별히 희생정신을 갖고 봉사활동을 많이 하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학생 등 스펙으로 드러나지 않는 훌륭한 인성을 갖춘 학생을 추천받겠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삼성이 그동안 들여왔던 인재에 대한 노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대학은 ‘추천장 할당량’이 대학의 서열화를 부추겼다고 비난한다. 대학 서열화는 이미 대학 스스로 정해놓은 상황에서 우수 인재의 양성·배출이라는 제 기능을 포기한 채 이름값으로 연명해 보겠다는 저수준 대응에 비할 바 없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주장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정치인과 지자체 단체장들은 삼성그룹의 채용제도 시행 유보를 자신들의 공이라고 선전하는 어이없는 장면까지 연출했다.
결국,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고자 하는 소수에 의해 주도된 상황의 반전으로, 침묵하고 있는 수많은 ‘끼’ 있는 인재들의 희망은 깨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