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영일(곽도원)을 절대로 “형”이라고 부르지 않고, 칠순이 다된 아버지(남일우)에게 막말을 하지만 태일은 가족을 아낀다. 아버지에게 잘하는 동갑내기 형수 미영(김혜은)에게 고맙고, 가족 중 드러내놓고 자신을 반겨주는 조카 송지(강민아)에게는 무엇이든 사주고 싶다.
작은 동네 수협에서 일한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미모와 아픈 아버지 병수발도 마다하지 않는 효심의 호정에게, 거칠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다가간다.
돈이 필요한 호정에게 돈을 미끼로 어설프게 교제신청을 하지만 쉽지는 않다. 그러나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면 백 번이라도 찍을 것’같은 태일의 노력에 호정은 조금씩 마음을 연다.
음지에서 밝은 곳으로 태일을 이끌고 싶은 호정은 태일이 가장 좋아하는 치킨집을 내자고 제안한다. 태일도 같은 마음이다. 깨끗하게 손을 씻고 새 출발을 하려고 마음먹은 태일은 친구이자 대부업 사장 두철(정만식)이 제안한 ‘마지막 큰 건’에 발을 들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결국 상가 계약을 위해 모아둔 3000만원을 두철의 계획에 태우지만 뒤통수를 맞고 만다.
사실 영화의 소재는 진부하다. 제멋대로 살던 한 남자가 사실은 알고 보면 따뜻한 남자였고, 예쁘고 착한 여자를 만나 개과천선한다는 내용은 TV 드라마부터 각종 소설과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소재이다.
그러나 그런 진부함을 진부하지 않게 하는 것이 배우들의 연기이다. 특히 황정민은 ‘태일’ 그 자체다. 발목 부분을 좁게 줄인 기지바지와 화려한 문양이 들어간 셔츠, 신발주머니를 연상시키는 일수꾼들의 전유물인 손가방은 원래 황정민의 것이었던 기분이 들게 한다. 가슴 절절한 황정민의 연기는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스크린 속 그가 울 때면 관객들도 함께 울었다.
황정민 뿐 아니라 한혜진과 곽도원, 정만식, 김혜은, 남일우, 그리고 신예 강민아까지, 배우들이 보여준 자연스러운 연기의 힘은 대단했다.
이제는 유부녀인 한혜진의 과하지 않은 차분한 연기와 언제 어디서 어떤 역할에도 변함없는 그 캐릭터에 푹 빠지는 곽도원,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 김혜은, 사실은 귀여운 남자지만 연기할 때는 카리스마 폭발인 정만식, 대사가 아닌 모습에서 설득력을 가진 원로 남일우, 황정민의 앞이라고 기죽지 않고 빛을 발한 강민아, 이들이 보여준 연기호흡은 완벽했다. 카메오로 깜짝 출연한 박성웅은 보너스. 황정민과 <신세계>의 명대사 “드루와”를 주고 받는 장면은 감독의 센스를 알 수 있게 했다.
극의 중심에 서서 스토리를 이끌고 가는 황정민의 연기의 향기는 진하다. 다른 모든 것을 차치하고 황정민의 연기만 보러가도 아깝지 않다. 황정민은 ‘티오피’같은 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