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칼럼> 닭이 먼저일까, 알이 먼저일까?

2013-11-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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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줄다리기만 하고 있는 유료방송 합산규제과 관련하여

최정일 숭실대 경영대학 교수


최정일 숭실대 경영대학 교수= 동네에 나름대로 규모를 갖춘 지역슈퍼마켓이 있었는데 어느날 기업형 슈퍼마켓이 들어와 경쟁을 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날 기업형 슈퍼마켓보다 훨씬 큰 대형마트가 들어와 상권을 잠식하기 시작하더니 기업형 슈퍼마켓의 지분을 투자해 출자관계 사이가 됐다. 과연 이러한 상권에서 공정한 경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경우 그 동네의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이와 같은 상황이 국내 유료방송 시장에서도 유사하게 발생했고 일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유료방송 합산규제에 대한 입법추진 및 정책방안 마련이 요원한 상태로 국회 공정성특위 및 미래창조과학부 국정감사에서 관련 논의를 했지만 명확한 방안은 도출되지 않았다. 이렇게 유료방송 시장의 합산규제를 둘러싸고 이해관계자들 간 갈등만 고조되고 있다.
합산규제를 둘러싼 이슈는 공정경쟁의 조건 및 이용자 선택권의 보장 여부다. KT계열은 산업활성화를 위해 사전규제는 타당하지 않으며 이용자의 선택권을 제약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합산규제를 반대하고 있는 반면, 경쟁사업자 진영은 공정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동일서비스 동일규제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며 특정사업자의 시장독점을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합산규제는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국회 및 정부는 조속한 시일 내에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특히 다음 사항에 대해 사전에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유료방송 시장의 경쟁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디지털 유료방송시장에서 KT계열은 42.3%(6월 기준 645만)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특수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위성방송과 IPTV 간에 합산점유율 규제가 적용되지 않아 아무런 제한 없이 결합상품을 통해 가입자의 확대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SKT나 LG U+가 KT와 동일한 IPTV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면서도 KT만큼 가입자를 많이 확보하고 있지 못하는 주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가입자를 근간으로 하는 유료방송서비스의 경우 망외부성(network externality)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 가입자수보다 몇 배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하는 효과를 가지게 되며, 특히 부가 및 결합 서비스로의 연결에 절대적인 우위를 가지게 된다. 공교롭게도, 과거에 (구)KTF가 (구)정보통신부가 망내할인제를 도입할 때 SKT의 망외부성 효과 및 지배적 사업자의 독점력 강화를 우려하는 정책건의문을 제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음으로 사전규제를 폐지하고 사후규제로 일원화하여 점유율 규제를 대체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여부이다. 해외사례를 근거로 규제완화를 국내에 그대로 적용하기보다 국내 상황 및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미국 규제기관인 FCC가 추진했던 시장점유율 규제에 대해 미국 연방 항소법원이 해당 규제를 폐지토록 한 까닭은 점유율 상한인 ‘30%’의 규제수준에 대한 근거가 미비했기 때문이지 규제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 이에 따라 FCC는 시장경쟁상황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시장점유율 규제를 적용할 뜻을 밝힌바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과 달리 현재 공정경쟁 촉진을 위한 별도의 사후규제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전규제를 폐지할 경우 시장이 혼탁해 지고 방송의 다양성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사실 IPTV 사업자들이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이라는 별도의 법안이 아니라 방송법의 틀안에서 사업을 영위했다면 지금처럼 많은 가입자를 확보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이제와 사전규제를 폐지하자는 것은 순서가 맞지 않는 논리이다. 
  
끝으로 정부와 국회는 구체적인 규제방식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 즉 규제의 범위, 특수관계자 포함 여부, 권역제한 폐지 여부 등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규제개선을 추진하면서 고려해야 할 점은 많지만, 현재와 같이 이해관계자의 대립이 첨예한 경우 가장 기본은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다. 즉, 동일서비스에 동일규제를 적용한다는 원칙 하에서 규제 형평성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 돼야 한다. 전병헌 의원과 홍문종 의원이 입법발의한 관련 개정안이 기준이 될 수 있는 만큼 조속한 입법추진이 요구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부의 주무부처도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합산규제 도입이 늦어질 경우 공정경쟁 유인에 대한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며, 규제미비 및 공백 상태에서 특정사업자가 시장을 독점할 경우 사후규제로 질서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too big to regulate)이 될 수 있는 만큼 관련법의 정비 및 정책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아는 한, 사업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창의기반의 경제는 어떻게든 가입자를 확보하기 위한 약탈적 가격경쟁이 아닌 공정한 시장경쟁의 룰이 적용되는 환경속에서 만들어진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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