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정부(1993년), 김대중 정부(1998년), 노무현 정부(2003년), 이명박 정부(2008년) 등의 집권 첫 해 단행한 재계의 사장단 인사를 통해 뽑아낸 공통점은 이러했다. 전반적으로 새 정권 첫해마다 재계의 연말 인사는 이같이 대대적으로 실시됐다.
다음주 LG그룹을 시작으로 진행되는 주요 그룹의 연말 사장단 인사도 박근혜 정부 출범 첫 해에 이뤄지는 만큼 과거 사례처럼 교체 폭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부 할 것 없이 집권 첫 해에는 다양한 대기업 관련 정책을 내놓는 가운데에서도 ‘재벌 길들이기’ 기조가 뚜렷하다. 인사와 조직개편은 기업 고유의 권한이자 결정 사항이지만 정부의 정책방향에 박자를 맞춰가야 한다는 분위기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따라서 그해의 대기업 인사는 정부의 경제정책에 맞춘 테마로 진행되는 경향이 뚜렷했다. 김영삼 정부 첫 해에는 경영혁신운동과 수출증대를 위해 수출비중이 높은 제조업체와 해외지사를 강화하는 한편 젊은 인사들을 요직에 대거 기용했다.
김대중 정부 때에는 IMF외환위기 상황에서 대대적으로 벌어진 재벌개혁과 빅딜이라는 태풍 속에서 구조조정을 진행하던 각 그룹들은 사업 통폐합과 원로급 인사들을 퇴진시키고 새 사람을 끌어 앉혔다.
2003년은 노무현 정부가 집권한 해다. 그해 재계는 역시 최대 규모의 인사를 통해 기술력 강화와 글로벌 경쟁력 확대라는 정부 기조에 맞춰 이공계와 해외파 출신의 젊은 세대들을 대거 중용했다. 과거에도 간간히 나오긴 했지만 철저한 실적 위주라는 인사 원칙이 두드러진 해이기도 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때에는 글로벌 외환위기의 발발에 따른 세계 경기 침체를 뚫기 위해 세대교체론이 전면에 드러나면서 고령의 사장단들이 대거 물러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인재 등용 및 발굴이 이뤄졌다.
2013년 재계의 사장단 인사는 실적부진과 세대교체에 따른 사업재편, 총수 공백을 메울 친정체제 구축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재계 맏형인 삼성은 다음달 초 연말 사장단 인사를 단행할 예정이다. 3대 관전 포인트는 ‘이부진·이서현 역할 조정’과 ‘소문난 잔치 삼성전자’, 그리고 ‘사업구조 재편 후폭풍’이다.
지난해 승진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보직 변경보자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 선임여부가 관심사다. 이부진 사장은 호텔신라와 함께 에버랜드와 삼성물산 상사부문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어 올해 부회장 승진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이서현 부사장은 패션사업 양도에 따라 제일모직에서 에버랜드로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이미 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 사장을 맡고 있는 언니 이 사장과의 역할 조정이 필요하다.
전문 경영인중 권오현 부회장과 윤부근 CE부문 사장, 신종균 IM부문 사장의 부회장 인사 여부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권 부회장은 유임 관측이 우세한 반면 윤 사장과 신 사장은 승진이 점쳐지고 있다.
제일모직 패션사업을 맡고 있는 윤주화 사장의 에버랜드 이동 가능성과, 기존 김봉영 사장의 거취, 더불어 크고 작은 사고와 비리, 일부 계열사의 실적 악화 등에 따른 문책성 인사 가능성도 관심거리다.
12월말로 예정된 현대자동차그룹은 연구개발(R&D)과 품질 부문에서 대대적인 인사가 나올 전망이다. 또한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을 중심으로 한 영업력 강화 인사에도 신경을 쓸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영업력 강화가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품질의 경우 현대차는 지난 11일 권문식 연구개발본부장(사장)을 경질했고 김용칠 설계담당 부사장, 김상기 전자기술센터장(전무)의 사표도 함께 수리했다. 권 본부장 후임이 누가될지가 주목되고 있다.
한편, 일부에선 사장급 보다는 부사장급 승진자가 배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LG는 다음주 중 연말 인사를 실시한다. 올해 눈에 띄는 실적을 거둔 계열사가 많지 않아 예년에 비해 승진 및 교체 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장관 출신으로 LG가 공을 들여 영입한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도 견조한 실적을 바탕으로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인다. 계열사 CEO 중에는 이웅범 LG이노텍 대표(부사장)와 박종석 LG전자 MC사업본부장(부사장)의 승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LG생활건강을 8년째 이끌며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는 차석용 부회장은 유임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LG전자 부회장도 당분간 현재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총수 공백 사태가 지속되고 있는 SK그룹과 한화그룹의 사정은 정 반대다. SK그룹은 매년 12월 중순쯤 인사를 해왔지만 올해는 최태원 회장 형제의 공백 사태로 인사조정을 앞당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룹 재정비와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다. 연초 ‘따로 또 같이 3.0’ 신경영체제 출범에 따라 다수 계열사 CEO 교체 인사를 실시해 연말 인사폭은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3.0체제 출범 후 SK그룹은 계열사별 독립적 인사권한을 부여해 계열사마다 인사시기 등에 차이가 있다.
김승연 회장의 부재가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한화그룹은 내년 인사가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인사도 예년보다 늦춰지다 비상경영위원회가 출범한 직후 4월 말에야 단행됐었다. 특히 김 회장의 파기환송심 선고가 내년 초로 예상되기 때문에 그 이후 인사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GS는 매년 12월 초 인사를 실시해 올해도 비슷한 시기가 점쳐진다. 지난 6월 대대적 구조조정이 있었던 만큼 연말 인사폭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정준양 회장과 이석채 회장이 각각 사의를 밝힌 포스코와 KT도 후임 회장이 선임된 뒤에야 인사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양사는 새 회장이 취임할 때마다 큰 폭의 조직 개편과 인사가 단행됐던 점을 미뤄볼 때 이번 인사의 폭도 결코 적지 않을 전망이다.
현대중공업 그룹은 당초 지난 15일로 예정됐던 사장단 인사가 현재까지 늦춰지고 있다. 빠르면 이번 주 안으로 발표될 것으로 보이는데, 임기를 1년 남긴 이재성 사장의 유임 여부와 대주주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의 장남으로 올해 회사에 입사한 정기선 부장의 임원 승진 여부를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 임원이 사직서를 제출한 대우조선해양은 고재호 사장이 연말 인사를 앞두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그룹은 김영민 한진해운 사장의 후임이 누가 될지, 3년 임기가 만료되는 지창훈 대한항공 사장의 연임 여부 등이 주목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