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기(氣)를 살리자-3> 명확한 잣대 없는 '무비판 기업 정서' 지양해야

2013-11-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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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이재호 기자 = #장면 1. 지난달 13일 삼성그룹 대졸 공채 전형의 첫 관문인 '삼성직무적성검사(SSAT)'가 전국 83개 고사장에서 동시에 치러졌다. 5500명을 뽑는 데 역대 최대인 9만명 이상의 응시자가 몰려 경쟁률이 16대 1을 넘어섰다. 

그로부터 10일 후인 지난달 22일 SSAT 합격자 발표날이 되자 온라인에 개설된 수십개의 취업 포털사이트는 합격 여부를 확인하려는 이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삼성 고시'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과열 현상이 나타나자 삼성그룹 측은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SSAT 시험을 개편키로 했다.

#장면 2.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가 개최되는 매주 수요일 강남 서초사옥 정문 앞에는 어김없이 삼성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린다. 

삼성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집회 내용도 바뀐다. 지난주에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들의 직원 고용 방식에 대해 비판했다면 이번주에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대해 규탄하는 식이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행인들은 삼성 사옥 쪽을 향해 눈을 흘기곤 한다. 삼성이 잘못한 게 있으니 많은 이들이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집회에 참가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유독 삼성에 대해서만 이같은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다른 국내 대기업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1200명을 채용하는 현대자동차 공채에 10만명 이상이 지원했지만, 현대차 제품 홍보를 위한 실시한 이벤트에 대한 일반인들의 참여도는 저조하다. 오히려 이벤트 홈페이지가 급발진이나 에어백 미작동 등 품질 관련 불만을 토로하는 글들로 도배가 되기 일쑤다.

이석채 회장의 비리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KT와 최태원 회장의 구속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SK그룹의 올해 하반기 공채는 각각 150대 1과 90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국내에 팽배한 반(反) 기업 정서를 걱정하지만 실제로는 무비판 기업 정서에 가까운 게 현실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명확한 잣대 없이 본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혹은 정치권이나 노동계에서 확대 재생산하는 여론에 따라 기업을 평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이는 각종 설문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올해 상반기 기업호감도지수(CFI)는 48.6으로 지난해 상반기 50.9, 하반기 49.8보다 하락했다. 

요소별 점수를 살펴보면 국가경제기여 항목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 49.9에서 하반기 51.0, 올해 상반기 51.2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호감도 항목은 지난해 상반기 49.3에서 하반기 48.1, 올해 상반기 46.7로 하락세다. 

대기업들이 수출 증가와 고용 창출, 소득 증대 등 국가경제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지만 여러가지 이유가 복합작으로 작용하는, 말 그대로 전반적인 호감도는 오히려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기업에 호감이 가지 않는 이유로 '윤리적 경영 자세 부족'을 꼽은 응답이 50.9%로 가장 많았다. 올 들어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해 이재현 CJ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이 잇따라 사법 처리를 받은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위법 행위를 저지른 기업의 경우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엄중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기업을 평가하는 사회적·윤리적 잣대가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가장 닮고 싶은 최고경영자(CEO)로 이건희 삼성 회장을 꼽으면서 한편으로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비판하려면 그에 걸맞는 준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야 기업인들도 각계에서 제기되는 지적을 겸허한 자세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대한상공회의소 신임 회장으로 취임한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과거 용인되던 잘못된 행동이 있다면 이제 바로 잡아햐 하며 법과 원칙 안에서 투명하게 경영 활동을 해야 한다"면서도 "일부의 잘못된 행동으로 전체가 매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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