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효성그룹 15년전 어떤 선택을 내리고 결정했나?

2013-11-0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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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 산업.IT부 부국장
아주경제 이상준 산업.IT부 부국장=경영자의 중요한 임무는 ‘선택’과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는 끊임없이 선택과 결정을 반복한다. 선택과 결정은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므로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다.

최근 세무당국과 사정당국은 수사를 통해 효성그룹이 1998년 구조조정 결정 전후의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른 정황이 포착됐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의 발표에 문제를 제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시 처한 상황에서 정말로 효성그룹 오너 일가가 의도적으로 불법 행위를 알고도 이를 선택하고 결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분위기를 파악하고자 과거의 언론 보도문을 뒤져보고 효성 출신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의견을 종합해 보면 1998년초 당시 효성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였다. 

IMF 외환위기의 발발과 함께 모기업인 효성물산의 부도설이 증권가와 금융가에 나돌았고, 회사에 보증을 서 줬던 계열사들이 연쇄부도 위기에 몰렸다.

효성물산은 종합무역상사였다. 외환위기 이전까지 모든 종합상사들은 정부의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따라 어느 정도의 무리한 수출을 강행해야 했다. 이러한 것들이 하나 둘씩 쌓이면서 부실 규모가 확대됐다. 이는 효성물산 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에 속한 종합상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정부의 압박에 효성그룹은 더 이상 이들 부실 문제를 털어내야만 했다.

당시 효성그룹이 효성물산 문제 해결을 위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파산을 하거나 △공적자금을 받거나 △벌어서 갚는 것 등 세 가지 였다.

먼저. 효성물산을 파산시킨다는 것은 일종의 ‘꼬리 자르기’로, 회사 임직원들은 눈물을 머금고 보따리를 싸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효성물산을 파산시키면 계열사들이 효성물산에 지급보증한 약 3000억원만 해결하면 됐다. 그러나 효성은 파산하는 방안은 아예 검토대상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임직원들 때문이었다.

두 번째 방법인 효성물산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은 회생을 위한 현실적인 방안이었고, 다른 대기업 계열사들도 이 같은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당시 효성물산은 누적된 부실 규모가 워낙 컸기 때문에 회생을 위해서는 1조원을 뛰어넘는 거액의 공적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다. 효성그룹은 국민혈세로 회사를 살린다는 것은 국가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단호히 제외했다.

결국 효성그룹은 마지막 하나 남은 ‘벌어서 해결하는 방법’을 택했다. 많은 희생과 어려움을 동반하는 가장 어려운 방법이었고, 추진 과정에서 자칫 그룹 전체로 위기가 확산될 위험 또한 높았지만 결과야 어떻게 됐든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오너 경영진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미련의 여지없이 결정했다.

그 해 여름 조 회장은 그룹 내에서 덩지 순으로 1~4위를 차지하고 있던 효성물산과 효성생활산업, 효성중공업, 효성T&C를 전격 통합해 지금의 ㈜효성이라는 하나의 회사로 합치고 직접 대표이사를 맡아 책임경영을 실시했다.

당시 이헌재 부총리와 주거래은행인 한일은행장이 조회장을 불러 만약 효성물산을 파산시키면 “모든 계열사 대출금을 회수하겠다”고 협박하자, “모든 걸 바쳐서라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채권은행에 피해가 안 가도록 하겠다”며 “합병 후 경영이 제대로 안 되면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는 이행각서를 조회장이 직접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열사 수는 20개에서 11개로 줄었고, 부동산을 비롯해 팔 수 있는 건 다 팔아 2년 동안 6000억원을 만들어 빚을 갚았다. 결국, 주력 4사의 합병으로 효성은 즉시 재무구조가 개선되는 효과를 거뒀다. 4500억원의 합병 차익이 발생했고, 무상주 발행과 자본금의 대폭 증액이 이루어진 것이다. 효성그룹의 재무구조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효과를 거뒀다.

임직원들은 고용을 유지했고, 누적됐던 부실을 순차적으로 갚아 나갈 수 있었다. 국가 경제에 피해를 주지도 않으면서 스판덱스, 타이어코드, ATM기, 시트밸트 등 세계 일류상품을 만들어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높였고, 이를 통해 벌어들인 이윤으로 구조조정 당시 발생한 손실을 갚아나가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정부와 재계는 효성그룹의 구조조정 사례를 ‘신의 한 수(手)’라며 치켜세웠고, 조 회장은 재계 대표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에 까지 올랐다. 하지만 2013년 현재, 효성그룹은 과거의 성과는 모조리 묻혀버리고 탈세기업, 비리기업으로 둔갑될 위기에 처해있다.

효성그룹이 효성물산을 파산시키거나 공적자금을 받았다면 현재와 같은 곤혹을 치렀을까?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기업가의 선택과 결정은 기업의 생존과 성장이 우선되며, 이를 통해 국가경제에 기여하면 더할나위 없이 좋다. 적어도 자체 구조조정을 취한 덕분에 효성그룹이 현재까지 경쟁력을 유지하며 생존할 수 있었다는 데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점은 15년전 효성그룹의 선택과 결정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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