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국회 국정감사장에 최고경영자(CEO)가 증인으로 채택돼 출석한 한 대기업 대관 업무 관계자는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국감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CEO는 수백억~수조원의 매출을 책임지는 자리인데 주요 회사 사안을 제때 처리하지 못하고 하루를 보낸 것은 회사가 받은 영향도 적지않다”며 이렇게 하소연했다.
‘기업감사’를 방불케하며 시작한 이날 각 상임위원회 국감장에 증인 및 참고인으로 참석한 기업인의 수는 무려 40여명. 올해 국감기간에 채택된 총 200여명의 기업인 중 가장 많은 수가 참석했다.
정무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와 소비자원 국감에만 23명의 기업인을 출석시켰다. 김경배 현대글로비스 사장, 백남육 삼성전자 부사장, 손영철 아모레퍼시픽 사장을 비롯해 김충호 현대자동차 대표, 배영호 배상면주가 대표, 조준호 LG그룹 사장, 도성환 홈플러스 대표, 박기홍 포스코 사장 등 대기업 CEO들의 모습이 보였다.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 브리타 제거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사장, 정재희 포드코리아 대표와 세르지오 호샤 한국지엠 대표 등 수입차 CEO들도 국감에 처음으로 출석했다.
환경노동위원회의 환경부 국감에는 전동수 삼성전자 사장,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등이 출석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고서 불참한 기업인들도 제법 있었으나 사유서 제출이 남발되자 국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법원이 정당한 사유 없이 증인 출석에 불응한 기업인들에 대해 처벌을 강화한 덕분에 이번 국감에서 사유서를 제출한 증인은 없다고 한다. 여기에 경제민주화, 반기업 정서 등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상황에서 증인 출석에 불응할 경우 받을 수 있는 엄청난 비난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만큼 해당 기업과 기업인들은 이번 국감에 굉장한 부담감을 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각 기업 대관업무 담당자들은 자사 CEO의 증인채택이 결정된 직후 알려줘야 할 정보와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철저히 준비하는 한편, 국감 당일에도 현장에서 분위기를 살피며 수CEO를 챙기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증인으로 출석한 기업인들은 그동안 언론을 통해 비중있게 다뤄졌던 이슈인 일감 몰아주기, 하도급업체와의 불공정 거래 행위, 업체간 담합을 통한 가격 폭리,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등과 관련해 정부의 규제와 정책을 어기며 폭리 등에 대해 각종 근거자료를 제시하며 기업인들을 질타했다.
그런데 신문 과정에서 의원들은 정작 피감기관인 정부부처의 입장을 두둔하고, 이에 대해 반발하는 기업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품질 개선 등 기업의 고유 경영권한까지도 따지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CEO들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을 설명하고자 했으나 작정하고 몰아붙이는 의원들로부터 발언 기회는 거의 얻지 못한채 “시정하겠습니다”, “조치하겠습니다”라는 짧은 대답만 늘어놔야 했다. 직원들이 열심히 준비해 준 예상질의 답변서는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증인 심문 시간이 끝났어도 의원들의 추가 질의 때문에 국감장을 떠날 수도 없었다. 결국 저녁 늦게 회의가 끝날 때까지 시간을 보낸 기업인들은 밤늦게 다시 회사로 돌아가 미뤘던 업무를 마쳐야 했다. 그래도 하루로 끝내면 다행인데, 분위기는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2주후 종합감사 때 CEO들을 다시 소환한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CEO의 일정 문제도 그렇거니와 담당 직원들도 국감 기간 내내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