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이 뭐길래…", 우애도 버린 재벌 형제들

2013-09-24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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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언니와 어머니의 지원을 끝내 거부한 동생, 상속재산·경영권을 놓고 갈등을 겪고 있는 형제, 반항한 동생을 가족에서 제외시킨 형.

대한민국 대기업 오너 일가의 형제 간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 명이 잘 되면 형제 자식은 물론 집안 전체를 모두 키우고 도와주던 1세대 창업주 시절의 미덕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2세대, 3세대로 경영권이 대물림되면서 피붙이 간에 서로를 물고 뜯는 싸움은 오히려 타인과의 그것보다 더 심하다.

범 삼성가, 범 현대가, 범 한진가는 물론 금호아시아나그룹 등 규모와 상관없이 형제·자매·남매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열이면 여덟, 아홉이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원인은 '회장'이라는 자리에 대한 욕심 때문이다. 후계자가 되면 수천~수십만명의 인재를 휘하에 두고 죽을 때까지 왕처럼 떠받듦을 받으며 기업 운영에 있어 필요한 돈을 직접 통제하고 관리하는 '1인자'가 될 수 있다. 여기에 그룹의 적통성까지 물려 받으면 오너 일가 집안을 대표한다는 상징성까지 얻을 수 있다.

'1인자'인 아버지를 곁에서 보고 자란 자식들은 누구보다 자리의 맛을 잘 알기 때문에 모두들 이에 오르고 싶어 한다. 이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경쟁관계가 되는 것임을 의미한다. 서로의 장단점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형 또는 동생이 나보다 더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고, 경쟁에서 밀려도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형제들은 십중팔구 기업의 불안요소로 돌변하는데, 범 삼성가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맹희 CJ 고문 간 재산분쟁, 그룹 해체 직전 현대그룹에서 벌어진 '왕자의 난'이 이에 해당한다.

현대그룹을 이끌고 있는 현정은 회장은 창업주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3남인 고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의장의 부인이다. 현 회장은 남편의 별세 후 창업주의 장남 정몽구 회장의 현대자동차그룹과 4남 정몽준 의원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 고 정 명예회장의 막내동생인 정상영 명예회장의 KCC그룹으로부터 여러 차례 경영권 분쟁에 맞서야 했다.

3형제 간 경쟁이 워낙 치열해 조석래 회장이 쉽사리 후계자를 낙점하기 어렵다고 알려졌던 효성그룹은 차남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 지난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틀이 잡히는 듯했다. 하지만 조 전 부사장이 최근 효성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했고, 첫째인 조현준 사장과 막내 조현상 부사장은 각각 계열사 지분율을 늘리면서 또다시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형제들이 일정 기간, 또는 순서를 정해 경영권을 이어가는 기업들도 있다. 창업주의 유언에 따른 것인데, 모든 기업이 그 유언을 지킨 것은 아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내 박삼구·찬구 회장 간 갈등은 아직도 진행형이며, 두산그룹의 경우 지금은 복원됐지만 2000년대 중반 고 박용오 전 회장의 반발로 큰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창업주들이 무리를 해서라도 기업을 인수하려고 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많은 자식들에게 나눠주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범'이라는 수식어가 따르는 방계 기업들은 창업주 세대에서 형제·자식·친척들에게 계열 기업을 하나씩 떼어줌으로써 생겨났다.

하지만 기업을 분할하는 과정에서 불미스런 논쟁이 결국에는 형제 간 절교를 선언하는 경우도 있다. 한진그룹에서 각각 독립한 한진해운, 한진중공업, 메리츠종금증권 등 4형제 집안의 갈등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미 후계구도가 정리됐던 것으로 알려진 롯데그룹도 신동주 일본롯데 부회장과 신동빈 한국롯데 회장이 최근 주요 계열사 주식을 사들이면서 아버지 신격호 회장 이후의 롯데그룹 대권을 잡기 위한 물밑경쟁을 벌이고 있다.

동양그룹과 오리온은 고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의 두 딸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과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이 물려받아 지분 관계도 완전히 정리됐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룹 모태인 동양그룹이 유동성 해소를 위해 오리온 측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오리온은 이를 거절했다.

대기업에서 오너 관련 업무를 관할했던 전직 고위 임원은 "최고의 자리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이들 오너 형제들에게서는 '우애', '양보'는 기대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만큼 그들은 모든 것을 걸고 베팅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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