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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 13일 충남 당진시 현대제철에서 열린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제3고로 화입식’ 행사에서 3고로의 첫 가동을 위해 불을 지피는 ‘화입(火入)’을 하고 있다. |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지난 14일 오후 2시 충남 당진시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제3고로에서 첫 쇳물이 흘러나왔다.
전일 오전 10시 30분경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3고로에 화입을 한 지 하루여 만이다. 이로써 현대제철 당진제철소는 내용적 5250㎥의 초대형 고로 3기를 모두 가동하면서 총 연간 1200만t의 쇳물 생산능력을 보유했다.
단일 제철소 기준으로 조강 생산능력이 1000만t이 넘는 제철소는 세계 1·2위인 포스코 광양제철소(2150만t), 포항제철소(1750만t)을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당진제철소의 규모는 세계 최상위권에 속한다.
3고로 화입을 마친 정 회장은 기자들에게 "백 년 동안 꺼지지 않을 불을 지피니 감회가 새롭다"는 말로 기쁨을 표현했다. 현대제철은 결국 승리자가 됐다. 하지만 이 승리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한 지난 과정은 국내 정치계·재계 거인 간의 피 말리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현대가에서 제철산업 참여를 선언한 것은 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지난 1977년 9월 종합제철소 설립계획안을 내면서 시작됐다. 그 기반은 인천제철 인수였다. 1964년 공기업으로 출범한 인천제철은 경영 부실로 산업은행 관리 하에 있었고 1978년 정 명예회장은 회사 인수를 추진 중이던 장상태 동국제강 회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현대중공업과 동국제강이 각각 50대 50의 동일지분으로 공동 인수한다는 데 합의한 두 총수. 하지만 입찰 마감을 코앞에 두고 정 명예회장은 동국제강을 버리고 단독 입찰서를 제출한다. 정 명예회장의 과거사에 있어 보기 드문 경우로 합작을 먼저 파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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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 13일 충남 당진시 현대제철에서 열린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제3고로 화입식’ 행사에서 기념사를 낭독하고 있다. |
당시 매출기준 재계 순위는 포항종합제철(현 포스코)이 1위, 현대중공업이 2위, 동국제강 3위, 대농 4위, 현대건설 5위, 인천제철이 6위였다는 점을 놓고 보면 정 회장의 파기는 재계를 흔들어 놓는 큰 사건이었다. 실제로 이 일로 장 회장은 생전 정 명예회장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풀지 않았다고 한다. 정 명예회장에게 있어 종합제철사업은 그만큼 중대한 사안이었다.
인천제철을 기반으로 현대그룹이 제2제철사업에 뛰어들자 박정희 대통령은 포철과 현대제철 사이에서 제2제철 사업자를 어디로 선정해야 할지 고민을 거듭했다. 민간기업이 맡아 국내 철강업의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정 명예회장의 주장과 이미 포항제철소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포항제철이 맡아 좋은 품질의 철강재를 싼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박태준 회장의 반론 모두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박 대통령은 결국 1978년 10월 포철에 제2제철소 사업권을 넘겼고, 이 결정으로 건립된 것이 광양제철소였다. 정 명예회장으로서는 첫 패배였다.
현대그룹의 좌절은 또다시 이어졌다. 정 명예회장이 1994년 7월 제3제철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하며 두 번째 도전을 선언하고 건설 예정지도 부산 가덕도를 제시했다. 이번에는 공급과잉을 우려한 정부의 반대로 좌절됐다.
1996년 1월 그룹 회장에 오른 정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제철사업 진출 의지를 밝히고 곧바로 종합제철사업 프로젝트팀을 발족해 세 곳의 유력 후보지 가운데 경남 하동을 선정했다. 소위 '하동 프로젝트'다.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뚝심'으로 밀어붙여 9부 능선까지 도달했으나 1998년 2월 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정 회장 스스로 포기한다.
강원산업과 삼미특수강을 인수하며 절치부심하던 정 회장에게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다.
2004년 진행된 충남 당진 현 부지를 차지했던 한보철강 인수전이었다. 포스코의 뒤를 이어 '제철왕'이 되고 싶었던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꿈이 좌절된 이곳을 갖기 위해 정 회장이 맞이한 상대는 포스코-동국제강 컨소시엄이었다. 포스코는 현대가의 제철의 꿈을 좌절시킨 주인공이요, 동국제강은 제철사업을 위해 총수 간 신의를 저버려야 했던 기업이다. 동국제강도 장세주 회장 체제로 바뀌어, 또 다른 '2대 간 싸움'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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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 화입(火入)한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제3고로에서 지난 14일 오후 2시 첫 쇳물이 성공적으로 흘러나왔다. 방열복을 입은 작업자가 쇳물이 통로를 따라 토페토카(쇳물을 닮아 옮기는 차량)로 잘 흘러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
결과는 과감한 인수가격을 제시한 정 회장 측의 승리였다. 한보철강을 인수한 현대제철은 당진 부지에 일관제철소 건립사업을 진행키로 마음 먹었고 2006년 승인을 얻어냄으로써 꿈을 이뤄냈다. 도전을 선언한 지 36년여 만에 거둔 결실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고로는 철강업계에 있어 최고의 지향점이자 모든 기업들의 꿈"이라며 "모두가 갖고 싶어했지만 결국 고로를 쟁취한 기업은 포스코와 현대제철, 그리고 브라질에 꿈을 실현하고 있는 동국제강이 전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