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복기금 도입으로 형평성에 어긋날 정도로 빚을 탕감해줬던 정부가 이젠 무분별하게 대출을 확대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대출 확대가 자칫 전셋값 상승을 부추길 가능성도 크다. '빚 권하는 정부'란 오명까지 붙었을 정도다.
22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이번주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0.19% 상승해, 52주째 상승 기조가 이어졌다. 수도권은 무려 0.38% 상승했다. 시도별로는 서울(0.33%), 세종(0.33%), 경기(0.27%), 경북(0.23%), 대전(0.21%), 인천(0.21%), 대구(0.20%), 강원(0.10%) 순으로 오름폭이 컸다.
전셋값 상승의 가장 큰 원인은 매물 부족이다. 가을 이사철을 앞둔 상황에서 전셋값 상승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책을 내놓고 있다. 우선 대책으로 전월세 대출을 확대했다.
대표적인 게 '목돈 안드는 전세대출'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국민·우리·하나·농협·외환·신한 등 6개 은행은 '목돈 안드는 전세Ⅱ'로 불리는 임차보증금 반환청구권 양도방식의 전세자금 대출 상품을 23일 출시한다.
최대 대출 한도는 2억6600만원이다. 대출 자격은 부부합산 연소득 6000만원 이하이면서 무주택자이다. 대출금리는 은행별로 취급해온 기존 일반 전세자금대출보다 0.2~0.3% 포인트 낮다. 보증료 인하분까지 포함하면 0.5%포인트가량 부담이 줄어든 셈이다.
기준금리 산정방식이 은행별로 신규·잔액기준 코픽스, 코리보, 금융채권 수익률, 양도성예금증서, 내부 기준금리 등에 따라 차이가 있다. 신용등급과 거래실적에 따른 가산금리도 다르다.
집주인 담보대출 방식의 '목돈 안드는 전세Ⅰ'은 다음 달 출시된다. 시중은행들은 빠르면 이달 말부터 월세대출 상품도 출시할 계획이다. 금융당국은 월세대출 대상의 신용등급을 최대 9등급까지 늘리거나 대출 한도를 추가로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 국민 "대출 확대가 대책이냐"
그러나 이같은 정부의 전·월세 대책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가계부채를 낮춰야 할 정부가 되레 빚을 권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부동산 및 금융 전문가들은 전·월세 대출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시민단체들은 '목돈 안드는 전세대출' 도입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토지주택공공성네트워크, 금융정의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목돈 안드는 전세대출'이 전셋값 폭등을 부추기고 가계부채 문제를 심화시킬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전세 대란의 원인은 물량 부족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부가 잘못된 진단으로 전세 자금을 추가로 공급해 전세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며 "집주인들이 전세 호가를 높여 부르는 부작용도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차보증금 반환청구권 양도방식'과 '집주인 담보대출 방식' 등 2가지 유형으로 도입되는 것과 관련해선 "결국 안전한 이자수입으로 금융권의 배만 불리고 서민들은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세 대란을 해결하려면 전·월세 상한제를 즉각 도입해야 한다"며 "중소형 장기 공공임대주택 공급물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 역시 전세대출 수요를 축소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연구위원은 "주택정책을 '거래없는 가격안정'보다 '전셋값 안정'에 역점을 두고, 서민들의 추가 전세자금 대출 수요를 축소시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목돈 안드는 전세대출을 효과적으로 운영해 전·월세 보증금을 금융 저축액으로 전환하면서 악성 가계부채를 상환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실물자산이 부족한 금융자산을 대신할 수 있도록 역모기지 활성화 방안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