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동 골목은 일년에 두 차례 이처럼 북적북적하다. 한 번은 매년 3월 돌아오는 정 명예회장의 기일이고 또 다른 한 번은 변 여사의 기일때다.
이날에는 범 현대가 사람들이 총출동한다. 아무래도 국내 경제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현대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다보니 취재진들에게도 빠질 수 없는 연례행사다.
취재진들은 어떤 이들이 참가했고 어떤 이들이 빠졌는지를 체크한다. 대부분이 취재진을 지나쳐 집 앞에서 내리지만 혹여라도 한 마디라도 해줄까 목을 빼놓고 기다린다. 올해 역시 참석자를 체크하고 그들의 모습을 한 컷이라도 더 담기 위한 플래시가 연신 터졌다. 행여라도 불상사가 생기는 것을 막기위한 경호원들과 금요일 퇴근을 뒤로 하고 ‘회장님’을 지키기위해 모인 회사 관계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제사라는게 원래 집안 행사다 보니 크게 나올 이야기는 없다. 대부분 제사를 지내봤겠지만 보통 일반적인 가정의 제삿날 풍경을 생각해보면 멀리 떨어져 살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왁자지껄 일상을 나누고 그동안 쌓아놨던 가족간의 대소사를 나누던 정겨운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가.
재벌가라고 크게 틀리진 않을 터. 실제로 현대가 사람들은 이처럼 모일 때마다 가족사 외에 경영과 관련된 얘기는 나누지 않는다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정 명예회장의 기일과 변 여사의 기일이 돌아올때쯤이면 청운동 골목 어귀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가 가장 먼저 안다고 한다. 청운동 자택을 관리하는 분이 찾아와 숯을 한다발 사간다는 것. 제사가 끝나고 오랜만에 모인 현대가 사람들이 모여앉아 고인을 추억하며 마당에 숯을 피워놓고 고기라도 구워먹으며 형제간, 사촌간의 우애를 나눌지도 모르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