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본사와의 관계에서 ‘을’격인 협력사, 돌아보면 협력사 소속으로 역시 ‘을’인 근로자들의 각자의 이해관계가 불거진 것이다.
이번 사태는 지난달 민주당 ‘을지로(을 지키는 길로)위원회’ 소속 국회의원과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회, 전국금속노동조합 등이 위장도급 의혹을 제기하면서 촉발됐다. 삼성전자서비스와 도급 계약을 맺은 117개 서비스센터의 AS 기사들이 삼성전자서비스로부터 직접 업무 지시와 인사·재무 등의 관리와 지휘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도급’이란 수급인이 어느 일을 완성할 것을 약정하고 도급인에게 그 일의 결과에 대해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을 말한다. 노동자는 원청업체를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원청업체가 하청 근로자를 지휘·명령하지 못한다.
야당 의원들과 노동계는 삼성전자서비스가 개발한 전산시스템을 협력사에 제공해 협력사 직원들의 신상정보를 관리한 게 하도급 근로자를 지휘·통제한 실질적 증거라고 지적했다.
이러자 직원들을 채용한 협력사 대표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협력사들은 직원들을 채용하고 업무를 지시하며 급여를 주는 회사다. 삼성전자서비스라는 한 회사가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 있는 모든 애프터서비스(AS) 업무를 커버하기란 힘들다. 부족한 역량을 메우고 조직 비대화를 막기 위해 업무 관계를 맺은 것이 이들 협력사들이라는 점을 놓고 볼 때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서비스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삼성전자 서비스와 협력사들간 밀접한 업무 공조가 이뤄져야 한다. 업무지원시스템과 경영정보시스템(MIS) 등 경영정보 시스템의 지원, 입사 직원 위탁교육 등이 그 사례다. 타 전자업체와 이동통신서비스, 자동차 서비스센터, 프랜차이즈, 산업정수기와 비데 등 리스 사업에서도 삼성전자서비스와 유사한 형태의 도급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계는 국회와 노동계가 유독 삼성전자서비스에 대해서만 강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사태가 위장도급으로 결론 날 경우 삼성전자서비스는 협력사 직원을 정식직원으로 채용해야 하는데 그 직원의 수는 1만명에 달한다. 동시에 100여개 협력사 대표들은 하루아침에 직원을 모두 잃게 돼 폐업이 불가피하다. 이럴 경우 국회와 노동계는 삼성전자 제품의 AS사업 독점을 사실상 인정해 주는 셈이 되므로 후발 기업의 참여가 불가능해진다.
AS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지금보다 신속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삼성전자서비스가 전국 서비스망을 갖추는 데에도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구축한 비용을 거둬들이기 위해서는 AS 비용을 올려야 해 소비자 후생 효과는 더욱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로 협력사 대표와 직원들 간 불신도 커져 양측 모두 큰 상처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개선된다고 해도 쉽게 아물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국회와 노동계의 개입은 협력사 직원이라는 ‘을’을 살리기 위해 또 다른 ‘을’인 협력사를 모두 죽이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면서 “무리를 해서라도 중소기업 접합업종을 지정해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고 했던 이들이 같은 중소기업인 삼성전자 협력사를 죽이겠다는 저의가 뭔지 궁금하다”고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