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훈 영화감독이 본 발레 <오네긴> '사랑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2013-07-1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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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있었고 가을이 있었고 겨울이 있었습니다. 그해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겨울은 유달리도 달달 떨었나 봅니다.
여자들이란 두근거릴 때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착각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으니, 유달리도 추워서 떨어야만 했던 그해 겨울은 나도 누군가를 좋아했을지도 모릅니다.

워낙 오래 전의 일이라 기억이 안날 것도 같지만. 가방이 있었고, 그 가방 안으로 집어넣은 작은 손이 있었고, 그 작은 손이 집어든 한 장의 티켓이 있었습니다.

러시아 유학시절, 그날은 가장 춥고도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침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기보다 소란스러운 마음에 위로나 힘이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안고서 푸쉬킨의 발레 '오네긴'을 보러 갔습니다.

하지만 10분도 넘기지 못한 채 눈을 감았습니다. 이렇게 지독하게 비극적이고 냉혹한 이야기일 줄 몰랐습니다.

엔딩 막이 내려오자 말할 수 없이 차가운 바람에 휘감기는 듯 싸늘해졌습니다.
일시적 사랑일지도 모르는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져서 보는 내내 마음이 저려왔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향한 순수하고 헌식적인 사랑에 너무 몰입했던 나머지 혼자 피식 웃기도 했다가 슬프고 마음 아프기도 했다가 분노에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페테르부르크의 사교계에 싫증을 내고 있던 젊은 귀족 오네긴은 숙부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시골로 내려갑니다. 모든 것이 시큰둥하기만 한 오네긴은 권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친구 렌스키의 소개로 타냐를 만납니다. 렌스키도 타냐의 여동생 올가와 사랑에 빠져 정열을 불태우고 있는 중입니다.

첫눈에 오네긴에게 반한 타냐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편지를 보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거절입니다. 타냐의 생일 파티에 참석한 오네긴은 올가와의 춤을 독점하여 렌스키의 질투를 사게 되고, 결국 결투 끝에 그를 죽이고 마을을 떠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 이제는 공작부인이 된 타냐와 다시 마주친 오네긴은 뒤늦게 그녀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구애하지만 타냐의 거절 앞에서 그만 먹먹해지고 맙니다.

도스트예프스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름지기 제대로 된 작품이라면 도입부는 흡입력이 있어야 하고 종결부는 여운이 있어야 한다.” 이 말을 빌어 얘기해보자면, 작품에 담긴 하나하나의 의미들과 이야기의 흐름도 중요하지만, 종결부의 여운이 작품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푸쉬킨은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쓸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둔탁하지 않은 문법으로, 조근 조근한 어투로 서재에 앉아 어떻게 감춰진 삶의 단면들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을까?.
10일 유니버설발레단 '오네긴'무대를 사로잡은 타티아나 강미선.

푸쉬킨의 <오네긴>은 사랑이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깨지고 쓰러지고 화내고 울고 있는 타냐와 오네긴에게서 나를 보았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에 울고 쓰러지고 내동댕이쳤었던 나의 영혼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나간 일들이라고 생각했던 감정의 조각조각들이 이 무대에 함께 있었습니다.

사랑은 이별과 만남, 만남과 이별의 연속입니다. 사랑은 짧은 만남을 비롯해 결혼으로의 만남, 육친의 인연으로서의 만남, 불꽃처럼 번뜩이는 감정으로서의 만남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죽음과 회한, 그리고 소중하게 간직해온 순수한 열망과의 이별이 도처에 있습니다. 발레는 사물의 시인입니다. 움직임이란 추상을 명확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예술이기도 합니다.

<오네긴>은 사랑예찬의 고답적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의 숭고함을 함께 이야기하며 삶을 좀 더 차분히 수용하고 살아가게 하는 작품입니다. 참신함과 구체성 모두를 갖추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체성은 여러 번의 경험에서 비롯되는데, 그것은 필시 참신성을 헤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발레는 압축성과 완결성이 확고해야 합니다. 에피소드들로 붙는 여러 인물들의 행동은 천방지축이면 더욱 좋습니다. 마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전체 흐름상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며, 왜 필요한지 굳이 알 수 없어도 괜찮습니다.

러시아 유학이후 20년만에 만난 유니버설 발레단의 '오네긴'은 무용수들의 몸짓 하나 하나가 머릿속에 쾅쾅 도장을 찍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도장들이 모여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했습니다.

우리는 대개 서툰 춤을 추고 살고 있습니다. 아마 그 춤이 익숙하고 잘 맞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지도 모릅니다. 예술은 삶의 그림 퍼즐 조각입니다. 그림 속에는 살아 숨 쉬고 있는 우리의 속내들이 하나씩 살아납니다. 목숨 있는 것들은 모두 숨을 쉬며 살아야하고, 그래야 합니다. 삶과 환희와 아픔.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오네긴>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감동의 울림을 전할 것입니다.


◆민병훈감독=개봉 일주일만에 스스로 조기종영해 화제가 된 영화 '터치' 감독. 러시아국립영화대학대학원에서 촬영 석사후 '벌이 날다'로 1998년 이탈리아 토리노영화제 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그동안 괜찮아 울지마, 포도나무를 베어라, 아 굴업도, 가면과 거울을 연출했고, 차기작 '사랑이 이긴다'(가제)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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