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는 “외관에 끌려 타워형 아파트에 살아보니 전에 살던 판상형보다 채광과 환기 등이 안 좋아 다시 판상형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됐다”고 말했다.
한때 밋밋한 외형으로 수요자들에게 외면을 받았던 판상형 아파트가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타워팰리스와 같은 세련된 외관으로 설계된 타워형 아파트가 인기를 끌었지만 상황은 달라졌다.
아파트 분양시장에서는 타워형보다 판상형 청약률이 더 높은가 하면, 수요가 늘면서 집값 시세도 판상형이 더 높게 형성되고 있다. 이는 최근 주택시장이 투자수요에서 실수요 위주로 바뀌면서 외형보다는 실속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어서다.
실제로 타워형은 사방에 막힘이 없어 조망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것이 매력적이다. 하지만 일부 가구는 남향이 아닌 동향이나 서향 등에 배치돼 일조량이 좋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로 인해 판상형보다 관리비가 많이 나오는 편이다. 타워형은 설계가 쉽지 않아 공사비도 많이 든다. 판상형보다 분양가가 상대적으로 높을 수 밖에 없다.
반면 판상형은 외관이 단조롭지만 대부분 남향 위주 배치해 채광과 통풍이 잘된다. 게다가 평면이 네모반듯해 짜투리 공간이 없어 공간활용도가 높다. 최근 나오는 판상형 아파트는 단점으로 지적돼온 좁은 동간거리 극복을 위해 건폐율도 낮췄다. 앞 뒤 동의 층수와 배치를 달리해 조망권도 확보하는 등 특화설계를 적용하고 있다.
높아지고 있는 판상형 선호도는 최근 분양시장 성적으로도 증명된다. 지난해 8월 대우건설이 분양한 ‘위례신도시 송파 푸르지오’는 청약 결과 총 14개 타입 중 9개의 판상형 타입은 모두 1순위에서 마감됐다. 반면 5개의 타워형 타입 중 전용 106㎡E1 타입을 제외한 모든 탑상형은 3순위 가서야 청약을 마감했다.
대우건설이 지난 4월 대전 유성구 죽동에서 분양한 ‘죽동 푸르지오’ 역시 판상형인 전용 75㎡와 84㎡A 타입만 1순위에서 마감됐다. 반면 타워형인 전용 84㎡B·C 타입은 3순위에서 겨우 새 주인을 찾았다.
지난달 높은 경쟁률로 청약을 마무리한 ‘위례 힐스테이트’도 수요자들의 판상형 쏠림현상이 나타났다. 판상형인 전용 99㎡A(61가구)와 탑상형인 99㎡B(62가구)의 청약 평균 경쟁률은 각각 35.7대 1, 16.1대 1로 큰 차이를 보였다. 같은 날 분양한 ‘래미안 위례신도시’의 경우 100% 판상형으로 설계한 점이 수요자들을 끌어 모으는데 도움이 됐다는 분석이다.
삼성물산 조달희 분양소장은 “요즘 분양가, 관리비 등 내실을 따지는 실속파 수요자들이 늘면서 타워형보다는 판상형 아파트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같은 단지라도 판상형이냐 타워형이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난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월드컵파크 12단지의 전용 84㎡A형(판상형)은 5억1000만원이지만, 전용 84㎡B형(타워형)은 4억9500만원이다. 서초구 방배동의 서리풀e편한세상도 판상형인 전용 59㎡A형은 7억1000만원으로, 6억3500만원인 전용 59㎡B형보다 7500만원 더 비싸다.
판상형 아파트가 인기를 끌자 건설사들도 판상형 설계 비율을 높이고 있다.
삼성물산은 다음달 분양 예정인 ‘래미안 용인 수지’와 ‘래미안 부천 중동’을 80% 이상 판상형 아파트로 조성할 계획이다. 대우건설도 하반기 분양할 위례신도시 A2-9블록 ‘위례 푸르지오’에 판상형 아파트를 90% 정도 배치할 예정이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주택시장이 관리비와 주거편의성 등을 고려하는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되고 있어 탑상형 보다는 주거환경이 쾌적한 판상형 선호현상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