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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인터뷰/ 사진=남궁진웅 기자 - timeid@ajunews.com |
이미 널리 알려졌듯, 정우성은 <감시자들>의 시나리오를 보고 무척 마음에 들었다. 감시하는 자와 당하는 자 사이의 긴장감이 좋았고 둘 사이를 엮는 스토리의 탄탄함이 좋았다. 황 반장(설경구)와 신참 형사 하윤주(한효주)의 감시를 당할 범죄단의 보스의 제임스 역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영화의 긴장은 더욱 고조될 수 있다고 보았고, 하윤주의 성장영화일지라도 스타급 배우가 악역을 맡아 준다면 영화는 한층 빛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발짝 떨어져 남의 영화 얘기하듯 생각하던 정우성은 오래지않아 ‘누군가’일 것 없이 제임스를 자청하는 것으로 자신의 영화, 자신의 캐릭터로 선택했다. 그리고 “정우성이 한다면 제임스를 키워야지” 말하는 제작진에게 그대로 두라고, 하찮은 도둑일 뿐이라고, 그러면 영화의 짜임새가 흐트러진다고 만류했다. 절제를 통해 딱 제몫만 연기했다.
그리고 쏟아진 호평. 언론시사회에서 기자들은 영화를 향해, 특히나 정우성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고 일반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미리 만난 관객들도 정우성의 생애 첫 악역에 박수를 보냈다. “정우성이 하니 악역도 다르다” “악역이 정우성이니 영화가 한결 더 있어 보인다”. 정우성은 한사코 히로인 한효주에게로 시선을 돌리려 했지만 관객은 정우성을 주목한다. 20년 세월 큰 기복 없이 영화계를 주름잡아 온 거물배우여서가 아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미남배우라는 타이틀이 어울릴 만큼 잘 생겨서도 아니다. 정우성보다는 제임스, 제임스보다는 영화의 균형을 생각하며 연기한 진심이 스크린 위에 흐르고, 관객은 그것을 본 것이다.
7월의 첫날,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마주한 정우성은 미소 짓고 있었다.
“호평 감사하죠. 하지만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제 할 몫을 다했고, 이제 <감시자들>은 제 손을 떠나 관객 곁으로 갔습니다. 흥행이 다는 아니지만 관객 여러분이 좋아해 주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늘 그렇지만, 개봉 성적을 기다리는 마음은 늘 긴장되네요.”
스태프가 예매율 1위 소식을 전해 주자 “그래요? 와, 다행이네요”라고 말하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웃음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개봉 첫날인 3일, 평일임에도 21만 관객이 티켓을 끊었다.
“저 개인적으로도 <감시자들>은 치하하고 싶고 토닥여 주고 싶은 괜찮은 작품이에요. 저도 저지만 영화가 잘됐으면 좋겠어요.”
마치 부모가 애틋한 자식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고 영화를 세상에 내놓는 것을 산고에 비유하곤 한다. 숱한 고비를 겪으며 얻은 자식, 무엇을 잘해도 그렇게 대견하고 기특할 수가 없고 칭찬하고 안아 주고 싶은 마음, 나보다는 자식이 더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정우성에게 <감시자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인가 보다. 부모가 자식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은 무엇이 있을까.
영화를 사랑하는 각별한 마음이 느껴져, 우문이지만 어쩌다 그런 마음을 갖게 됐는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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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인터뷰/ 사진=남궁진웅 기자 - timeid@ajunews.com |
대뜸 “이윤정 감독의 <나를 잊지 말아요>에 출연하는 이유도 되돌림의 의미인가요?”라고 물었다.
“음, 얘기가 좀 긴데요. 이 영화가 원래 단편이었어요. 스토리도 좋고, 미스터리 로맨스라는 점도 신선했어요. 어느 날 이 감독이 ‘선배, 저 이거 장편으로 만들려고 해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단편 좋게 봤다, 그런데 단편에 또 다른 단편을 붙인 것처럼 써서는 안 된다, 단편은 잊고 아예 처음부터 장편으로 생각하고 구성해야 한다고 응원했죠.”
“다시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똑똑하게 잘 써왔더라고요. 근데 시나리오를 줘 놓곤 이 친구가 쭈뼛댈 뿐 말을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먼저 ‘왜 나한테 출연제의를 못하니? 배우는 재미있으면 기꺼이 한다, 아니 재미있는 시나리오는 배우를 움직인다’ 얘기하며 출연을 제의했죠. 그렇게 시작된 작업인데요. 선례가 되면 좋겠어요, 감독을 꿈꾸는 많은 후배들이 용기 내서 선배 배우들한테 제의하게 되는 선례요. 사실 감독은 좀 뻔뻔해야 해요(웃음).”
맞는 얘기다. 재미있는 시나리오는 배우를 움직인다. 정우성 자신도 그렇게 <감시자들>의 제임스를 자청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초심을 잃기 십상. 출연을 결정할 때와 달리,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대해 욕심이 생기는 게 다반사다. 제임스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욕심보다는 여유와 양보가 느껴지는 정우성이 대단해 보이는 이유다.
“욕심을 부렸다면 제임스도 <감시자들>도 오염됐을 거예요. 저 위주로 채우려 했다면 지금 받는 찬사도 못 받았을 거고요.”
정우성이 비우니 평단과 관객이 채워 준 셈인가. 과유불급의 우를 범하지 않은 결과다. 어쩐지 조각 같은 외모에 롱코트를 입고 빌딩 옥상에 서서 도심을 내려다보며 도둑질을 주도하는 제임스가 오래도록 다시 보고 싶어질 것 같다. 1967년작 프랑스영화 <사무라이>에서 세기의 미남으로 불리는 알랭 드롱이 레인코트의 깃을 세우고 슬쩍 남의 차에 올라 수많은 열쇠가 달린 꾸러미를 꺼내 차를 훔치는 모습이 자꾸만 떠오르듯이 말이다.
정우성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시각적으로 멋있어 보일 뿐 한낱 잡범이라고, 자신에게 위해가 될 것이라 판단하는 순간이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람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악인이라고. ‘우아한 악역’이 가져올지 모르는 범인 미화에 대한 경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