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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북 지역 화물의 70%, 컨테이너의 90%를 처리하고 있는 다롄 보세항 전경. 다롄은 한·중·일 FTA가 체결될 경우 보세항을 동북아 물류 중심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
다롄시 금주신구(金州新區) 경제무역국 소속으로 한국 투자 유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옌하오(嚴浩) 국장은 본지와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자신감에 차 있었다.
중국 동북 지역의 경제 중심지이자 중국에서 가장 활력이 넘치는 도시로 꼽히는 다롄이 한·중·일 FTA 시대를 맞아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옌 국장은 “다롄은 중국 동북 지역 화물의 70%를 책임지는 물류 중심이며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장 가깝고 역사적으로도 고구려의 유산을 간직한 곳”이라며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지만 반일 감정이 거의 없어 현재 일본 기업 진출이 가장 활발한 도시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래 전부터 다양한 문화가 공존해 왔기 때문에 중국에서 대외 개방도가 가장 높은 곳”이라며 “동북아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이 쉽게 어우러질 수 있는 흔치 않은 도시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동북아 경제 통합의 가능성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경제적·지리적·역사적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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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롄시 최대 규모의 공원으로 해변에 인접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싱하이(星海)공원 전경. 다롄은 친환경 도시로 중국 거주환경 조사에서 항상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
한·중·일 FTA 체결을 위한 1차 협상이 지난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렸다. 한·중·일 경제 통합을 위한 첫 걸음을 뗀 것이다.
옌 국장은 한·중·일 FTA를 계기로 다롄이 재조명을 받게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다롄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1260억 달러로 랴오닝성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1인당 소득은 이미 베이징을 앞섰다. 또 친환경적인 거주 환경과 온화한 기후, 발달한 패션산업 등 때문에 중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로 꼽힌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다롄을 ‘북방명주(北方明珠)’로 부르고 있다.
특히 다롄 경제성장을 이끌고 있는 금주신구는 지난해 GDP 260억 달러로 도시가 아닌 일개 구에 불과한데도 랴오닝성 전체에서 4위를 기록했다.
금주신구는 세계 500대 기업 중 73개 기업이 진출해 있으며 대형장비 제조와 석유화학 중 중공업 중심에서 첨단 IT 산업으로 산업 구조 전환을 꾀하고 있다. 인텔이 30억 달러를 투자하는 등 세계적인 IT 기업들이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금주신구 인근에 위치한 보세구의 다야오완항(보세항)은 원유, 광석, LNG, 곡물 부두를 갖추고 있으며 중국 동북 지역 화물의 70%, 컨테이너의 90% 이상을 취급하고 있다. 또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완성차 생산기지에는 일본 닛산 등이 입주해 있다.
중국 정부는 보세구를 중국 동북 지역의 물류 중심을 넘어 동북아 물류 중심으로 육성하기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예고했다.
금주신구의 투자 여건과 보세구의 물류 여건을 감안할 때 한·중·일 FTA가 체결될 경우 중국 시장 공략을 노리는 한국과 일본 기업들의 진출이 줄을 이을 수 있다.
지리적 장점도 갖추고 있다. 발해와 황해가 만나는 랴오닝반도 끝에 위치해 선박 접근이 용이하며 항공기를 이용할 경우 한국에서 1시간, 일본에서 3시간이 소요된다. 특히 다롄은 산둥성의 칭다오와 더불어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중국 도시다.
역사적 유대감도 상당하다. 다롄은 고구려가 요동 지방을 지키기 위해 세웠던 천혜의 요새 비사성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또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뤼순감옥도 있다. 이 때문에 매년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다롄을 찾는다.
일본과의 관계는 더욱 특별하다. 다롄은 청나라와 러시아 간의 전쟁이 끝난 뒤 러시아 영토가 됐다가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식민지가 돼 40여년간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다롄 주민들에게서 반일 감정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식민지배 기간 동안 별다른 피해가 없었던데다 일본의 지원으로 경제가 빠른 속도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현재도 다롄 내 모든 대학에 일본어과가 개설돼 있으며 전체 해외 투자 가운데 3분의 1을 일본 기업들이 투자했다. 일본 기업에서 근무하는 인력은 17만명에 달한다.
이 때문에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영토 분쟁으로 반일 감정이 극한으로 치달았을 때도 다롄에서는 반일 시위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러시아와 일본 등 외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다롄은 중국에서 대외 개방도가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기업 규제와 시민의식 등에 있어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장 가까운 도시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한·중·일 FTA 체결 이후 한국과 일본 기업이 쉽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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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롄 한국인 국제학교. 해외 진학률 1위를 자랑하는 명문 국제학교다. |
한국 정부는 지난해 8월 다롄에 한국영사사무소를 개설했다. 다롄에 진출하는 기업이 늘고 교민 수도 급증하면서 랴오닝성 성도인 선양의 총영사관만으로는 민원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롄 현지에서 만난 이상택 초대 소장은 격무로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다롄의 발전 가능성 및 한국과 다롄 간의 협력관계 증진 가능성에 대해 얘기할 때에는 만면에 웃음이 번졌다.
이 소장은 “다롄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1000여개에 이른다”며 “다롄은 한국과 가까울 뿐만 아니라 동북 지역의 공업·물류·금융 중심이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과의 관계가 더욱 밀접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다롄은 일본에 친화적인 도시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 한국 투자 유치를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한국 친화적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교민 수도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정부가 서부대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동부 연안 도시들에 대한 투자가 감소하고 있지만 다롄은 인프라 확충 등을 통해 도시 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옌 국장은 “법인세 등에 있어 기존 혜택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업종별 특성과 물류비용 등을 감안해 여전히 동부 연안으로 진출하려는 기업들이 많다”며 “특히 동부 지역의 경제 수준이 높아 소비재의 경우 동부에 생산 거점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 식품에 대한 불신이 높아져 한국 식품 기업이 중국에 진출하면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 기업에 제공할 수 있는 혜택을 늘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다롄시 정부는 한국 교민들의 편의를 높이기 위해 한국 국제학교의 무료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 이 학교는 중국 내 국제학교 중 미국 등 해외 진학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또 지난 2005년부터 한국어로 진행되는 TV 프로그램 ‘한중 브릿지’가 매주 2회에 걸쳐 방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