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이번 회담으로 한반도 평화 정착과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안착을 기대했지만, 첫 단추부터 진통을 겪는 데 대해 아쉬운 분위기가 역력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2일 공식 일정 없이 통상업무를 수행했다. 회담 무산과 관련한 회의 등 공식 일정도 잡지 않았다.
다만 지난 7일 재가동됐던 판문점의 남북 간 연락채널이 닷새 만에 다시 끊어진 상황 등을 감안해 국가안보실과 외교안보수석실을 중심으로 북한 측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당국회담의 경우) 완전히 문이 닫힌 건 아니지만 우선은 중단된 상태고, 협상이 무산됐다. 그렇다고 대화 자체를 닫은 건 아니니 향후 협상 과정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과거에 박근혜 대통령이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고 했던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며 "북한이 다른 나라와 교류할 때 국제적 기준에 맞게 행동하고, 우리나라에는 굴종을 강요하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이 처음부터 과거에 해왔던 것처럼 상대에 대한 존중 대신 굴종이나 굴욕을 강요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발전적인 남북관계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담 준비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된 만큼 우리 국민도 같은 마음을 가졌을 것"이라며 "앞으로 남북회담은 정상적·상식적으로 가야 하고, 대등한 관계에서 진행하겠다는 원칙은 변함없다"고 덧붙였다.
이는 과거 북한이 '격(格)'에 맞지 않은 대표를 내보냈던 비정상적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원칙과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강경 기류는 미국과 중국을 '원칙과 신뢰'라는 상식 논리로 설득하면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대북 압박 공조를 확대하는 데 나름대로 성공을 거뒀다는 자신감이 바탕에 깔렸다는 분석이다.
또 판을 깨고 나간 쪽이 북한인 만큼 박 대통령이 잃은 게 별로 없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가 나서서 회담 제의를 할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다.
박 대통령이 '도발→지원→도발'이라는 과거의 악순환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점을 거듭 천명한 것은 남북관계의 '기본적 체질'을 바꾸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한 새로운 질서 모색이라는 원칙을 명확히 하면서 국제사회의 공조 속에 남북관계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과도한 원칙고수가 북한에 압박 일변도로 비쳐진다면 박 대통령의 신뢰 프로세스 역시 이명박 정부의 엄격한 선(先) 비핵화론과 다를 것이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