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화학산업이 범용사업을 축소할 기조인 것이 주된 요인 중 하나다. 이는 수출시장에서 한국과의 경합 제품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의미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은 자국 내 수요부진과 중동산 등 저가제품 공세에 따라 수출 시장에서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는 석유화학 기초유분(중간 원료)을 축소하고 있다. 비교적 범용제품에 속하는 기초유분은 NCC로 만드는 에틸렌 등이 대표적인데, 일본은 이를 축소하는 대신 기능성 화학소재와 전기전자, 헬스케어 분야를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일례로 미츠비시화학이 내년 NCC 공장 일부를 가동 중단할 예정이고 스미토모화학도 2015년부터 치바 소재 NCC를 정지하기로 했다. 아사히카세이화학도 내년 일부 NCC 가동 중단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기조로 일본의 NCC 생산능력은 2016년 현재(연산 800만t)보다 약 38% 감소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내 업계는 사실상 일본과 경합되는 화학제품이 많지 않다고 전한다. 그 중 가장 경합이 치열한 제품군이 NCC 등 기초유분인데 그나마도 일본의 축소방침으로 차별화노선을 걷게 된다는 얘기다. 이와 달리 한국은 최근에도 GS칼텍스가 프로필렌 25만t을 증설하는 등 기초유분 생산능력을 지속 확대하는 추세다.
수출경합이 심하더라도 일본이 엔저효과로 무조건 유리하다고 볼 수는 없다. 기초유분의 원료인 나프타를 수입하는 일본으로선 엔저에 따른 원료 수입 부담이 커 제품 수출의 경쟁우위가 상쇄되는 것이다. 실제 일본 화학기업들은 엔저에 대비해왔지만 원가 상승분을 흡수하는 데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꾸로 국내 화학 대기업은 신사업인 정보전자소재 분야 등에서 기술력이 높은 일본의 고급 원자재를 전보다 싸게 구매해오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LG화학측은 “엔화 약세로 정보전자소재 원료값이 하락해 득을 보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한국과 일본은 동변상련의 처지이기도 하다. 중동과 북미 등의 가스 기반 화학제품의 공세로 석유 기반 한국과 일본의 화학기업들은 대중국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의 엔저에 따른 대중국 수출효과도 가스 화학의 메가트렌드 속에선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이다.
다만 범용제품 위주의 국내 중소 화학기업들은 엔저 영향에 따른 피해를 보는 정도가 대기업에 비해 심해 보인다. 주로 플라스틱과 고무제품이 일본과 경합도가 높은 편인데 이 분야의 전방제품은 대부분 중소기업이 만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석유화학 수출 비중이 높지 않고 국내 제품과 차별화된 구조를 형성하고 있어 엔저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면서도 “엔저가 장기화되면 자동차, 전자 등의 전방사업이 위축되고 중소기업의 피해가 커질 것인 만큼 정부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