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도 여야가 자신들의 위치가 갑이 아니라 을이라고 서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갑은 권위적으로 군림하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반면에 을은 사회적 약자나 피해자라는 인상이 강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읍소전략'인 셈이다.
새누리당 한 의원은 9일 "정부조직법 개정, 추경안 편성 때만 봐도 야당의 뜻대로 끌려다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지난 8일 민주당 김한길 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 농담조로 "(국회에서) 요즘은 민주당이 더 갑인 거 같다"고 말했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정 총리의 생각과 비슷하다. 박근혜정부 출범 후 일련의 각료 인사청문회에서도 검증공세는 주로 야당이 펼쳤고, 사회적 화두인 최근 경제민주화 입법도 야당이 주도하는 양상으로 흐르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원내의석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새누리당이 당연히 국회 관계에서는 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민주당의 새 지도부는 갑을이라는 단어에 잠재해 있는 약자의 설움을 위로하면서 '을의 정당'이 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김 대표는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한마디로 을(乙)을 위한 정당"이라며 "을을 보호하고 살리기 위한 당 차원의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당내 대표적 전략통인 민병두 의원은 8∼9일 이틀 동안 트위터에만 갑을이라는 단어를 8차례 사용하며 홍보전을 펼쳤다.
일각에서는 경제민주화 화두를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빼앗긴 민주당이 '갑을론'을 통해 주도권을 되찾아오겠다는 전략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여당의 원내대표 경선에서 후보들은 청와대를 갑으로, 당을 을로 규정하는 선거운동을 전개해 눈길을 끌었다.
경선에 출마한 4선의 이주영 의원과 3선의 최경환 의원은 모두 당청관계에 있어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강력한 집권여당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당내에서 강한 집권여당에 대한 욕망이 있고 갈증이 있다"면서 "강력한 여당을 만들어서 국민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이번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