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4일 정례회의를 열고 이달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2.75%로 동결했다. 지난해 10월 0.25%포인트 인하된 이후 5개월 연속 동결이다.
현재 국내 경기상황은 지표로만 보면 좋지 않다. 생산과 소비, 투자가 고루 떨어졌다.
1월 산업생산지수는 전월보다 0.7% 감소하며 석 달만에 하락세로 돌아섰고, 설비투자는 전년동월대비 13.6%나 떨어지며 부진을 면치 못했다. 소비 역시 줄어들면서 이 기간 소매판매액지수도 전월보다 2.0% 줄었다. 2월 수출은 자동차, 선박, 철강 등을 중심으로 전년보다 8.6% 감소했다.
그럼에도 한은이 금리를 동결한 것은 우선 회복세가 나타나고 있는 대외 경기상황에서 통화완화정책을 시행하기에 다소 부담스럽다는 점 때문이다.
이날 한은이 내놓은 ‘최근 국내외 경제동향’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2월 취업자 수가 236명으로 전월 119명보다 늘고 주택가격의 전기동기대비 상승률이 12월 11.1%에서 1월 12.3%로 확대됐다.
중국 또한 수출이 1월 25.0%에 이어 2월 21.8%로 두 달째 20%대를 기록했으며 1~2월 소매판매의 전년동기대비 상승률이 12.3%, 1~2월 고정투자가 21.2%로 회복세를 지속했다.
이밖에도 유럽중앙은행(ECB)과 영란은행(BOE)과 일본 등 주요국가에서 잇따라 기준금리를 동결한 점도 동결 요인으로 작용했다. 대외금리 격차가 벌어지면 해외 유동성이 유입되면서 환율 하락을 유도해, 수출업체에는 악영향을 끼친다.
오히려 한은은 지난달에 이어 이달도 경기 인식에 대한 긍정적 인식 기조를 이어갔다. 한은은 이날 “국내 경기는 회복세가 다소 주춤하는 모습이지만 지난해 4분기 이후의 완만한 회복세가 유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근혜 정부의 내각 구성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는 점도 금리의 움직임을 막았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13일 인사청문회에서 올해 경제성장을 위해 재정정책을 적극 펼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에 따라 향후 정부의 경기 활성화 정책과 공조를 통한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라도 금통위가 금리 카드를 아껴놓았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북한 위협에 의한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아졌지만 금리 인하카드를 꺼낼만큼 금융시장에 충격이 크지 않았다는 점도 금리의 발목을 잡았다.
당초 시장에서도 금통위가 이달은 쉬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앞서 금융투자협회가 지난 26일부터 이달 4일까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채권업계 종사자 132명 가운데 53.8%가 이달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상반기 중으로 금통위가 금리를 한 차례 더 인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저성장세에 접어든 국내 경기의 회복과 아베노믹스 등으로 인한 환율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선제적인 통화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을 통해 "앞으로 해외 위험요인 및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험과 이에 따른 금융·경제상황 변화를 면밀하게 점검하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낮추도록 계속 노력하는 한편, 저성장 지속으로 성장잠재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가운데 중기적 시계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 범위 내에서 유지되도록 통화정책을 운용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