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아주중국> 중국 춘절의 경제학

2013-01-3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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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경기불황에도 춘절 경기는 ‘후끈’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를 앞두고 각 상점마다 붉은 색으로 장식한 녠훠를 판매하고 있다.

글 배인선 기자

도심 곳곳의 쇼핑가에선 붉은 색으로 장식한‘궁시파차이(恭喜發財부자 되세요)’, ‘신춘다지(新春大吉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란 글귀를 내걸고 녠훠(年貨•설맞이 용품)를 팔며 명절 분위기를 띄운다. 고향 방문을 위한 기차표를 사기 위해 기차역 매표 창구마다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섣달 그믐 밤에는 요란한 폭죽소리와 함께 화려한 불꽃이 하늘을 수놓는다. 폭죽 소리를 들으며 오랜만에 다 같이 모인 가족들은 둘러앉아 녠예판(年夜飯 설 전날 먹는 음식)을 먹으며 CCTV 설 특집프로그램인 춘완(春晩)을 시청한다. 설 아침엔 훙바오(紅包 붉은색 봉투에 담긴 세뱃돈)를 서로 주고 받으며 덕담을 건넨다.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 즉 설날의 풍경이다. 중국인에게 춘제는 송구영신, 고향방문 등의 의미를 가지는 만큼 명절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매년 1월 말 개최됐던 세계 최고의 민간 경제 포럼인 스위스 다보스포럼도 중국의 춘제로 중국 측 주요 인사들이 불참하면서 앞으로는 춘제와 겹치지 않도록 포럼 일정을 앞당긴다는 소식이 나왔을 정도다.

또 중국엔 ‘일년 내내 절약해도 명절은 제대로 보내야 한다(寧省一年,不省一節)’는 말이 있다.경기불황으로 꽁꽁 닫혀있던 중국인들의 지갑도 춘제 때만큼은 활짝 열린다는 뜻이다. 특히 중국이 내수 주도 경제로 경제구조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현재 춘제 소비는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13억 인구 대이동
해마다 춘제 전후 나타나는 13억 인구의 귀향 행렬은 민족 대이동을 방불케 한다.

중국 당국이 추산한 올해 춘윈(春運 설 연휴 운송)기간인 1월 26일부터 3월6일까지 총 40일간 이동인구는 연인원 34억700만명이다. 전년보다 8.6% 늘어난 사상 최대 규모다. 하루 평균 8500만명의 중국인이 이동
하는 셈이다.

기차표 예매를 위해 기차역에 수 십 미터씩 긴 줄이 늘어서 있는 모습은 중국에서 별로 낯선 광경이 아니다. 이른 새벽부터 기차표를 사기 위해 기차역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지난해부터는 기차표 온라인 전화 예매도 가능해져 기차표 구매가 예전보다 한결 수월해졌다. 하지만 이제는 온라인에서도 기차표 예매전쟁이 한바탕 벌어진다. 기차표 온라인 에매 사이트는 접속자가 많을 때는 1초에 동시접속자가 20만명에 달하기도 한다.

인기 철도 구간의 경우 기차표 예매 시작 5~10분 만에 동이 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20초 만에 표가 매진되는 사태까지 발생한다. 이에 따라 온라인 쇼핑몰에는 기차표 예매 클릭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각종 신종 소프트웨어까지 등장했다. 이 소프트웨어를 컴퓨터에 깔면 실시간으로 기차표 잔여수량을 확인할 수 있는 데다가 기차표도 자동으로 예매해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누리꾼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스무 시간씩 기차를 타고 주변 승객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춘제의 정겨운 풍경이다. 하지만 딱딱한 의자에 정자세로 장시간 앉아있는 것도 곤혹이다. 이에 따라 ‘잉쭤(硬座 일반좌석)’에서도 ‘롼워(軟臥 푹신한 침대칸)’처럼 숙면을 취할 수 있다는 각종 숙면도우미 상품도 중국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왕(淘寶網)에서 수 백 개씩 팔려나가고 있다.

최근 들어 중국당국의 사종사횡(四縱四橫) 고속철 건설 계획에 따라 각 지역에 고속철이 개통되면서 열차 이동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지난해 12월말 개통한 징광(京廣) 고속철로 베이징에서 광저우까지 8시간 만에 주파가 가능해졌을 정도다. 하지만 고속철 배차가 늘어난 반면 일반열차는 오히려 줄어들어 일반 서민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토로하고 있다. 값비싼 고속철을 탈 수 있는 여력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텅텅 빈 고속철, 만원인 귀성운송(空蕩蕩的高鐵, 滿當當的春運)’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돌고 있다. 한편 춘제 땐 징짱(京藏)·징청(京承)·징주(京珠) 등 주요 고속도로가 귀향 귀성 차량들로 주자장을 방불케 하는 교통혼잡을 빚는다. 한 자가용 운전자는 징주 고속도로 항저우 구간에서 차량 정체가 70km까지 이어져 열 하루 동안 고속도로에서 숙식을 해결했다고 호소했을 정도다.

더욱이 지난해 국경절부터 중국 주요 명절기간 승용차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됐다. 올해 춘제 연휴인 2월 9일부터 15일까지 고속도로 이용이 무료다. 이에 따라 중국 고속도로가 교통 정체 현상으로 홍역을 치를 것으로 우려된다.

중국 당국은 통행료 면제가 고속도로 교통 체증을 해결하고 주민들의 지갑을 활짝 열고 관광을 유도해 소비를 촉진할 것으로 확신했다. 실제로 지난 국경절 처음 시행한 통행료 면제 정책으로 중국 당국은 총 65억 4000만 위안의 내수 진작 효과를 봤다. 그러나 리다오쿠이(李稻葵) 칭화대 중국ㆍ세계경제연구중심 주임은 “세계에서 가장 바보 같은 정책”이라고 쓴소리를 내기도 했다.

춘제는 중국에서 일년 중 소비가 가장 많이 이뤄지는 시기다. 보통 각 유통상들의 평균 매출액이 평소보다 30% 이상씩 오르는 것은 기본이다. 지난해 춘제 연휴 일주일 간 중국 전역의 소비재 판매액은 4700억 위안에 달했다. 전년 춘제 때보다 16.2% 증가한 수준이다.

지난해 베이징 상하이 톈진 등 대도시 귀금속 매장 매출액은 금값 폭등에도 불구하고 50% 이상씩 급증했다. 이밖에 대표 녠훠로 꼽히는 바이주, TV 냉장고 등 가전제품, 스마트폰 등IT 기기 판매량도 급증해 이들 업계는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다. 올해 춘제에도 중국인들이 소비심리 회복으로 지갑을 활짝 열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춘제를 3주 앞둔 1월 중순 베이징 각 유명 식당의 90%는 이미 벌써부터 녠예판 예약이 꽉찼다. 룸을 예약하려면 최소 1500위안(약 28만원) 이상을 내야 하지만 이미 웬만한 식당 룸 예약은 한 달여 전부터 이미 불가능한 상태다.

중국 베이징 카오야(烤鴨 오리구이) 전문점인 취안쥐더(全聚德) 차오양(朝陽)점의 춘제 연휴기간 룸 예약은 이미 한 달 전 완료됐으며 현재 홀 테이블 몇 자리밖에 남지 않은 상태다. 한편 광저우 한 5성급 호텔에선 올해 8만8888위안짜리 초호화 녠예판을 출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춘제는 더 이상 중국인만의 축제가 아닌 전 세계인의 축제로 자리잡았다. 그만큼 전 세계가 중국 춘제 소비 특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는 뜻이다. 매번 춘제만 되면 중국 베이징 상하이 등 주요 도시 국제공항엔 해외 여행을 떠나는 출국자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지난해 춘제기간 중국인의 해외 소비액은 57억 달러에 달했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라스베이거스에 몰려와 시내 백화점 하나를 통째로 전세 냈다는 뉴스는 이제 더 이상 화젯거리가 아니다. 현재 전 세계 관광업계도 대거 몰려 올 중국인 요우커(遊客관광객) 맞이 준비에 한창이다.

올해 미국 백화점인 삭스핍스에비뉴(Saks 5th Ave.)는 중국 인롄(銀聯)카드와 춘제 연휴 미국에 오는 요우커들이 인롄카드를 긁으면 기프트카드를 증정하는 행사를 공동으로 전개하기로 했다. 삭스핍스에비뉴를 방문하는 외국인관광객 소비의 절반은 중국인일 정도로 중국인은 이 백화점의 주 고객이다, 현재 이 백화점 카운터에는 총 22개 인롄카 전용단말기가 배치돼 있다.

점원들을 대상으로 중국 문화 중국인 소비습관에 대한 교육도 실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디즈니랜드도 ‘동화나라 디즈니랜드에 함께 모여 설을 쇠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중국인 관광객 모셔오기에 한창이다. 디즈니랜드는 춘제 연휴 기간 요우커를 위한 특별 문화행사를 기획 중이며, 행사 개막식에는 현지 관광당국 고위급 인사, 월트디즈니사 대표 등 중량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다.

서울시도 지난 해 설 연휴를 앞두고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서 중국 네티즌을 대상으로 중국인 관광객의 관심사를 알아보기 위한 실시간 답변 코너를 마련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1년에 한 번뿐인 대축제
중국인에게 춘제는 명절이자 하나의 축제다. 이러한 중국인의 사고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중국 중앙(CC)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설 특집프로그램 춘완이다. 설 전야 중국에선 온 가족이 다 함께 둘러앉아 춘완을 시청한다. 춘완은 가요, 경극, 무용, 콩트, 서커스, 마술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전야 8시부터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방영된다. CCTV 춘완은 1983년 첫 방영 이래 벌써 올해로 31주년을 맞았다.

초기엔 거의 100%에 육박했던 시청률이 지금은 60% 정도로 낮아졌지만 지난 해 중국인 13억명 중 7억7000만명이 춘완을 시청하는 등 여전히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 가수 싸이가 올해 CCTV 춘완에 5억원이 넘는 거액의 출연료를 받고 출연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춘완이 얼마나 거액을 주고 거물급 스타를 모셔오는지 실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물론 이 소문은 싸이의 소속사에 의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춘완에 출연하기 위한 기업주의 광고 쟁탈전도 매년 화제다. CCTV 춘완 광고료는 아카데미 시상식 광고료의 수십 배에 달한다는 소문도 흘러나왔다. 실제로 지난 2011년 CCTV가 춘완으로 벌어들이는 광고수익은 6억 위안을 넘는다. 그러나 기업들의 지나친 광고쟁탈전으로 광고가 지나치게 많이 등장해 ‘광고 안에 춘완이 편성됐는지, 춘완 안에 광고가 편성됐는지 헷갈린다’는 시청자들의 불만에 CCTV는 지난 해부터 춘완 광고를 전면 폐지했다.

그래도 CCTV는 여전히 춘완 광고의 천문학적 수입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올해도 어김없이 ‘꼼수’를 부렸다. 춘완 광고 전면폐지를 선언한 CCTV는 공식 웨이보를 통해 15초짜리 춘완 홍보영상물을 발표했다. 이 짧은 15초짜리 영상물에만 모 브랜드 스마트폰, 모 업체 바이주, 모 업체 과일주스가 등장했다. 중국 누리꾼들은 이게 춘완 광고 폐지냐고 의문을 제기했지만 CCTV 측은 ‘간접 광고’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 CCTV 춘완을 그대로 중계 방송했던 각 지방위성TV도 춘완의 달콤한 돈맛을 알게 되면서 너도나도 화려한 스타들을 모셔와 성대하게 개최하기 시작했다. 싸이 역시 올해 CCTV가 아닌 중국 둥팡위성TV와 후난위성TV 춘완에 출연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각 지역 TV 방송국마다 춘완에 쏟아붓는 돈은 최소 1000만 위안에서 최고 6000만위안.

중국 40여개 지역 방송국에서 저마다 춘완을 개최하면 드는 비용은 최소 총 5억 위안(약 850억원)에 달한다. 일각에선 차라리 이 돈으로 초등학교 1000여곳을 더 짓거나 저소득층 자녀 16만명을 도울 수 있다며 춘완의 돈잔치를 겨냥해 비난의 화살을 날리기도 했다.

◆ 화려한 축제 이면의 그림자
“마오타이(茅台)술, 중화(中華)담배 등 가족 선물로 7000위안, 식사접대비로 5000위안, 교통비 잡비 포함 1000위안. 합계 1만3000위안. 월급은 고작 4000위안.”

중국 한 누리꾼이 공개한 설 지출 목록에서 보여지듯이 춘제가 꼭 모든 사람들의 축제인 것만은 아니다. 일부 중국인은 ‘봄의 명절’을 뜻하는 춘제를 ‘봄의 강탈’을 뜻하는 ‘춘제(春刧)’라고 부르며 한숨을 내뱉는다. 설만 되면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남들처럼 고향에 돌아가 가족 친지들에게 선물을 주고 소비를 해야 하는 고달픔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인에게 춘제는 그야말로 ‘야리산다(亞力山大 스트레스가 산처럼 크다를 뜻함)’다. 최근 들어 물가 상승으로 직장인 1인당 춘제기간 소비지출액은 1만 위안을 돌파했다. 이러한 부담감으로 아예 고향을 방문할 엄두조차 못 내는 ‘쿵구이쭈(恐歸族)’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춘제 연휴 전후로 고향으로 돌아간 일부 일용직 근로자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오지 않아 업체마다 일손이 달리기도 한다. 벌써부터 중국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에서는 가사도우미, 요리사, 식당 종업원 등이 부족해 구인난을 겪고 있다.

특히 주장 창장 삼각주 등 공업 지대엔 고향으로 떠난 농민공(農民工 도시이주 노동자)들이 춘제 연휴를 마치고도 일터로 복귀하지 않아 공장 가동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에 따라 매년 춘제 연휴가 끝나면 각 도시인력시장에는 인사 담당자들이 노동자들을 서로 모셔가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진다. 각 기업에서는 춘제 이후 직원들의 일자리 이탈을 막기 위해 귀향 버스 대절, 보너스 지급, 연봉 인상 등과 같은 방식으로 농민공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안간힘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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