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한국은행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전국 어음부도율은 0.20%로 17개월 만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부도업체 수 93개 가운데 개인사업자 22곳을 제외하면 모두 중소기업인 것으로 나타나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일본의 엔저 정책으로 엔화가 크게 약세를 보이면서 환리스크 관리에 취약한 중소 수출업체가 큰 타격을 입은 것"이라며 "이들은 외환 파생금융상품인 '키코사태'의 영향으로 선물환이나 환변동 보험을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키코사태는 지난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원화가치가 급변하면서 환율 파생상품인 키코에 가입한 국내 770여 기업이 2조2000억원의 손실을 본 사건이다. 이 여파로 대다수 국내 중견·중소기업이 환변동 보험 등 환율 변동 위험에 대비하는 기본적인 상품마저 외면했으며, 그 부작용으로 최근 엔화가치 급락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셈이다.
오주현 한국무역보험공사 환위험관리반장은 "지난해 환변동 보험 가입액은 1조1000억원으로 2008년(14조5000억원) 대비 10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며 "이 가운데 환위험 관리를 하는 중소기업은 15%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 10곳 중 6곳(65.1%)은 환변동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50만 달러 미만 기업 중 70% 이상은 환리스크 관리에 엄두조차 못내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엔저현상에 따른 중소기업의 불황이 한국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크게 우려했다.
허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금융팀장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수출 주요 품목 대부분은 엔저현상이 계속될 경우 수출전선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며 "이 같은 수출 악화는 내수경기 위축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허 팀장은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우리나라 고용시장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며 "환변동에 취약한 중소기업이 악화된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고용시장의 한파를 불러오게 된다"고 경고했다.
엔저현상이 '손톱 밑 가시'로 국내 수출기업에 제동을 걸고, 고용과 내수침체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 스스로 선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허 팀장은 조언했다.
그는 "정부는 올해 환변동 가입 규모를 늘리고, 무역보험공사 및 한국은행과 연계해 설명회를 여는 등 각종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중소기업들은 비용이 들더라도 이런 정부의 각종 지원책을 바로 알고 적극 이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더 늦기 전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태환 중소기업중앙회 통상진흥부장은 "중소기업들은 급등락하는 환율의 예측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이들을 위한 지원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안정적인 환율 운용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석태 SC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한국처럼 환변동에 민감한 나라는 전 세계에 없다"며 "정부는 '원화의 국제화'를 통한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