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지도자 대해부> 시진핑, 중화민족 부흥을 천명하다 (1)

2013-05-01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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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를 시작하며

2012년 11월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를 필두로 출범한 중국공산당 신지도부는 오는 3월 국가주석 국무원 총리,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 전국정치협상회의(정협주석) 등 중국 헌법기관들의 권한을 차례로 이양받으며 새로운 중국을 활짝 열어젖히게 된다. 중국공산당 최고 핵심지도부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다. 7인체제인 상무위원회는 매주 회의를 개최해 중국의 국가대사를 결정한다. 그리고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명과 중앙정치국 위원 18명 등 총 25명으로 구성된 중앙정치국회의는 매달 회의를 개최한다. 공산당에 설치된 기구지만 25명의 정치국회의 멤버들은 중국의 헌법기관들을 모두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내 최고의 권력기구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손끝에서 중국의 방향이 결정되고 경우에 따라 글로벌경제가 출렁이게 되고, 국제정세의 판도가 갈린다. 또한 우리나라와 중국, 특히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한중관계 역시 이들의 판단에 따라 막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이에 본지는 중국공산당 상무위원 7인과 정치국위원 18명을 집중 해부해 지면에 게재하기로 한다.

아주경제 베이징 특파원 조용성 기자 = “전 당과 인민이 단결해 역사적 성과를 이어가고 중화민족의 부흥에 분투 노력하는 게 우리의 책임이며 그로써 중화민족을 세계 속에 스스로 세우고 인류에 공헌해야 한다.” 지난해 11월1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최된 제18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에서 공산당 총서기로 추대된 시진핑(習近平)의 취임일성이다.

시진핑 총서기는 연설에서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표현으로 말문을 열고 5000년 중화문명과 중국 공산당에 대해 여러차례 반복해서 강조했다.

과거 번영을 재현해 세계 1등국가로 나아가겠다는 비전과 포부를 만천하에 밝힌 것으로 평가된다. 대국으로서의 군사외교적 역량을 키우고 1등국가에 걸맞는 민생을 확보하겠다는 정책목표도 함께 제시했다.

특히 지난달 광둥(廣東)지역을 시찰하면서 보여준 모습들은 중국인민들의 환호를 불러일으켰다. ‘제2 남순강화(南巡講話)’로 불리는 첫 광둥순시에서 시 총서기는 “국제 경쟁의 역사를 살펴보면 시간과 속도의 경쟁으로, 빨리 움직이는 쪽이 기회와 주도권을 선점하게 된다”면서 “경제구조 전환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인민들은 시진핑의 활발하면서도 자신감 넘치고 소탈한 모습에 환호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 역시 시진핑이 가림막이 되지 않은 소형 버스를 이용하고 주민과 스킨십을 강화하는 등 새로운 친서민 지도자 인상을 심고 있다고 호평했다.

시진핑 총서기는 혁명원로 시중쉰(習仲勳)의 막내로 태어나 남 부러울 것 없는 유소년기를 보냈다. 그러나 부친이 반혁명분자로 몰리면서 14살의 나이에 하방해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에서 8년간 지내며 농촌생할을 경험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칭화대학을 졸업한 시진핑은 잠시 국무원 판공청 등지에서 일하다 1982년 허베이(河北)성 정딩(正定)현 부서기를 시작으로 2007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오르기까지 25년간 지방을 돌며 근무해왔다.

푸젠(福建)성장, 저장(浙江)성장·서기, 상하이 서기를 지내면서 개혁개방을 적극 추진하는 등 업무 능력을 발휘하고 부패척결 의지를 보이면서 차세대 주자로 부상했다. 2007년 17기 1중전회에서 서열 6위로 상무위원에 오르고 이어 2010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까지 맡으면서 차기 `제1인자‘ 자리를 예약했다.

자기관리에 철저해 처신 문제로 구설에 휘말린 적이 없다. 그가 `큰형님’으로 삼는 쩡칭훙(曾慶紅)이 이끄는 태자당은 물론 상하이방 , 군부 등에 광범위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으며 개혁파 인사들과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인맥은 그가 중국의 제1인자로 올라가는 데 큰 자산이 됐다. 수영 등 운동을 좋아하며 한국 축구에 대해서도 관심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는 1998-2002년 칭화대학 인문사회학원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정치사상을 전공했으며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영대사를 지낸 커화(柯華)의 딸 커링링(柯玲玲)과 결혼했다 이혼한 뒤 1987년 인민해방군 가무단 소속 민족성악 가수인 펑리위안(彭麗媛)과 재혼했다.

중국에서 화끈한 기질로 소문난 산둥(山東)성 출신으로 15살 때 산둥예술학원에 입학했으며 18살 때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소속 가무단 단원으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펑리위안은 음악 명문대학인 중국음악학원 성악과에 입학해 중국에서는 성악과 최고학위인 석사학위를 취득한 재원이다. 스무살이던 1982년 중국 CCTV가 주최한 가요대회에 참가해 수상했다. 훗날 그녀가 부른 ‘희망의 들판에서’라는 노래는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키며 펑리위안을 스타 반열에 올려놨다. 시진핑은 펑리위안과의 사이에서 외동딸 시밍저(習明澤)를 두고 있다.

◆주요경력 ▲1953년 산시(陝西)성 푸핑(富平) ▲1974년 공산당 입당 ▲1979년 칭화(靑華)대 화공계 졸업 ▲1979-82년 국무원 판공청, 중앙군사위원회 판공실 비서 ▲1982년 허베이성 정딩현 부서기 ▲1985년 푸젠(福建)성 샤먼(廈門)시 위원회 상무위원, 부시장 ▲1993년 푸젠성 푸저우(福州)시 서기 ▲1999년 푸젠성 대리성장 ▲2000년 푸젠성 성장 ▲2002년 저장(浙江)성 부서기, 대리성장 ▲2002년 저장성 서기 ▲2007년 상하이시 서기 ▲2007년 정치국 상무위원,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당교 교장 ▲2010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2012년 공산당 총서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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