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살고 있는 전셋값으로는 주변에서 비슷한 면적의 전셋집을 도저히 구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 이씨는 울며 겨자먹기로 그나마 직장(서울 공덕동 소재)과 가까운 부천행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걱정이다. 2년 후 부천 전셋값이 덩달아 올라 수도권에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전셋값 상승세가 다소 주춤해졌지만 그동안 오른 가격은 여전히 세입자들을 짓누르고 있다. 최근에 계약 기간이 만료됐더라도 집주인들이 그 사이 오른 전셋값만큼 올려 부르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치솟는 전셋값·전세→월세 전환 증가…'렌트 푸어' 양산
렌트 푸어라는 신조어가 나온 가장 큰 이유는 전셋값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전국 평균 전셋값은 26.5% 올랐다. 서울·수도권은 25.2% 상승했다. 노무현 정부 5년간 전국 전셋값이 2.8%, 수도권이 2.9% 오른 것에 비해 10배 이상 뛴 셈이다.
아파트 입주 물량 부족도 전세난을 부추겨 렌트 푸어 양성에 일조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보금자리주택 공급과 시장 침체 등 영향으로 민간 건설사들의 주택 건설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아파트 입주 물량이 약 16만 가구로, 지난해 20만6000가구보다 더 줄어 향후 전세난이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울·수도권 전세난의 주된 이유는 매매시장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집값 추가 하락 불안감과 저가 주택(보금자리주택) 추가 공급 기대감 등이 맞물려 젊은층을 중심으로 주택 수요자들이 내집 마련 시기를 계속 미루고 있다.
전세의 월세 전환도 렌트 푸어 양성을 부추겼다. 부동산 활황기 때 대출을 받아 집을 샀던 집주인들이 대출 이자를 갚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전세금을 투자할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현실도 월세 전환이 급격히 증가하는 이유다.
이 때문에 서울시내 월세 거래 건수도 크게 늘고 있다. 지난 2010년 서울시내 아파트와 단독·다가구주택·연립주택의 월세 거래 건수(신고일 기준)는 4만7384건에 불과했으나 지난해는 9만8866건으로 약 2배 늘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현재의 전세난을 예전과 같은 문제로 진단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이영진 이웰에셋 부사장은 “전셋값 상승세가 한풀 꺾였지만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전세난이 계속 되풀이될 수 있다”며 “현 상황에 대한 원인을 문제별로 정확히 파악하고, 맞춤형 전세난 해소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주택 매매 거래 활발해야 전세난 해결"
지난 몇년 새 전셋값이 가파른 상승세를 타자 정부도 여러 번에 걸쳐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시장이 무덤덤하게 반응하는 등 대책이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
정치권도 전·월세 상한제 검토에 나섰다. 지난 4·11 총선에서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모두 공약으로 전·월세 상한제를 내놓았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상한제가 어느 정도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렌트 푸어가 더 이상 양산되지 않으려면 시스템의 근본적 구조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급격히 바뀌고 있는 전세의 월세 전환에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실장은 “월세이율이 낮을수록 전세의 월세 전환 부담은 줄어든다”며 “장기적인 월세이율 추세에 따라 전세의 월세 전환 이율 상한제 도입 여부가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 임대시장을 더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임대사업자의 세제 혜택 확대와 임차인의 월세 소득공제액 상향 조정 등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세입자들을 내집 마련 수요로 끌어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해결책이라는 주장도 많다. 주택 매매거래가 활성화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이 나와줘야 만성적인 전세난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실수요자들이 내집 마련을 하고자 하는 기대심리를 높여줄 수 있어야 하우스 푸어뿐 아니라 렌트 푸어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