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삼동 = 아주경제 이준혁 기자) '반지의 제왕' 안정환이 31일 오전 리츠칼튼 호텔서 14년간의 프로 현역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은퇴 기자회견을 가졌다.
안정환은 "오늘은 마지막으로 프로선수라 불리는 날이다. 14년간 프로 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고자 은퇴를 선언한다"고 운을 떼며 짧은 한숨을 쉰 후 "축구화를 신은 지 14년…"이란 말과 함께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안정환은 호흡을 가다듬고 "써온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쑥스러운 듯 웃고 눈물을 닦은 후 "눈물을 흘리지 않을거라 자신했는데 그동안 선수 생활이 필름처럼 지나가고 힘든 것보다 좋은 일이 많이 생각났다. 기쁨의 눈물이기도 했지만 아쉬움도 많이 남는 눈물"이라고 고백하며 "그동안 사랑해주신 팬들과 관심주신 언론에도 감사드린다"고 은퇴하는 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안정환의 기자회견 일문일답.
◆말씀하면서 눈물을 흘렸는데 눈물의 의미는?
△눈물을 안 흘릴 거라고 자신을 했는데 나도 모르게 (흘렸다). 내가 14년 동안 선수생활 하며 해왔던 게 필름처럼 지나가고, 힘든 것보다 좋았던 게 스쳐갔다. '기쁨의 눈물'일 수 있지만 '아쉬움이 정말 많이 남는 눈물'인 것 같다.
◆선수 생활에 대한 아쉬움은?
△마음은 2002년인데 지금 몸이 2012년이다. 운동도 개인적으로 하면서 몸상태가 충분히 할 수 있는 걸 느꼈지만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결정을 쉽게 못 내렸다. 아쉬운 부분 때문에 눈물을 더 흘렸다.
◆은퇴 이후의 계획은?
△당분간 조금 쉬고 싶다. 나만을 위해 아내가 많이 희생하고 나를 위해서 고생했는데 이제는 내가 아내가 하는 화장품 사업 등을 도와주고 싶다. 예전부터 유소년(축구교실)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 쪽으로 축구 발전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 있다. 축구 발전을 위해서 기초가 중요하다. 밑에서부터 도움을 주고 싶다.
◆대한축구협회가 제시한 은퇴 경기와 은퇴식을 고사한 진짜 이유는?
△뛰고 싶다. 하고 싶다. 은퇴식을 갖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축구가 중요한 시기다. 개인적인 바람 때문에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뛴다는 것도 한국축구의 발전을 위해 해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드컵을 진출하는데 있어 중요한 경기이기 때문에 그런 뜻을 전했다. 월드컵 진출이 결정되고 불러준다면 영광스러울 것이다. 추후 대한축구협회와 상의해 결정해야 할 것이다.
◆학창시절이 행복한 편은 아니었는데 그런 역경을 이겨낸 것이 선수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강한 마음을 줬다. 그런 부분이 성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안정환이라는 이름을 알린 원동력이었다. 당시는 힘들었지만 그것이 안정환이라는 사람을 만든 계기가 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과 축구인생에서 전환점이 된 인물을 꼽는다면?
△중학교 때 볼보이로 처음 프로축구 경기장에 갔을 때다. 김주성 선배님의 사인을 받으러 갔는데 사인을 안해주고 가셨다. 굉장히 충격을 받았었다. (웃음) TV보면서 따라 하고 싶던 선수여서, 나도 프로축구선수가 돼서 사인하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반지는 지금 어디있는가? 아내와는 전날 무슨 얘기를 나눴나?
△그때 반지는 지금 아내가 목걸이로 사용하고 있다. 어제는 일찍 자려고 했는데, 아내와 서로 얘기를 한 마디도 못 했다. 서로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아내는 울면서 잠들지 않았을까 싶다.
◆김남일 등 동년배가 국내에 복귀했다. 아쉬움은 없는가?
△더 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지금 선수를 더 하는게 더 맞는지 생각했을때 아쉬울때 떠나는게 팬들에게 좋은 모습이라 생각해서 결정했다. 14년 선수생활 동안 너무 힘들었다. 이제는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도 많이 힘들어했다.
◆14년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인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돈의 유혹'이었다. 팀을 옮길 때마다 금전적인 유혹이 있었다. 다른 리그나 좋은 리그에서 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그런 것이 힘들었다. 팀을 옮길 때마다 "왜 옮기냐?"는 따가운 시선도 힘들었다.
◆아내의 화장품 사업을 돕고 있다. 요즘 사업가 이미지로 알려졌는데, 사업가가 적성에 맞는가?
△처음에는 죽겠더라. 많이 힘들지만, 안 해본 것이기 때문에 힘들었다. 지금은 많이 배우고 느꼈다. 어떤 일이든 쉬운게 없다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사업이라는 것도 배우고 싶고 그 쪽으로도 성공하고 싶다.
◆1998년 K리그 트로이카였던 선수 중 이동국이 아직 선수 생활을 하는데 한 마디 전한다면?
△선배로서 (이동국이) 잘해서 기쁘다. 동국이도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 좋은 모습 보여줘 좋다. 동국이가 그라운드에서 내가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까지 더 보여줬으면 좋겠다. 동국이나 종수도 마찬가지로 팬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마지막까지 K리그를 위해 많이 희생하고 좋은 모습 보여주며 도움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블랙번 입단이 좌절됐을 때의 심정은?
△사인을 마치고 비행기 티켓도 끊고 집까지 구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입단을 못 하게 돼 정말 힘들었다. 그 때 잉글랜드로 갔으면 인생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지금도 그 때 사인용지를 갖고 있다. 가끔 정리하면서 보는데 '인생을 바꿀 수 있었던 종이 한 장'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프다.
◆지도자로서의 야망은 없는가?
△내가 지도자를 할 그릇이 못 된다. 많은 감독님 밑에서 배웠는데 쉬운 자리가 아니다. 부산 대우(현 부산 아이파크) 시절 (신윤기) 감독님이 힘들어하다 돌아가시는 모습도 봐서, 누구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고민이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생각이 없다.
◆연맹에서 K리그 홍보대사 맡기를 부탁하면 받아들일 것인가?
△그런 것은 언제든지 환영이다. 도움이 된다면 모른 것을 버리고서라도 일을 하고 싶다
◆한국 축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발자취까지 남긴 것은 없다. 사고도 많이 치고 좋은 일, 나쁜 일이 많았다. 이슈를 많이 만들어 팬들에게 관심을 끈 것 같다. 팀이 없어서 6개월동안 개인 연습도 한 적이 있다. 발자취 보다는 우여곡절을 많이 남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