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발 재정위기 심화로 수출과 기업의 투자는 줄어 고용여건은 악화되는 반면 금융권 대출회수 압력은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될 조짐이다.
경제전문가들은 내년 경제의 최우선 과제로 '가계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 임금정체·물가상승 가계고통지수 역대 3번째
28일 한국은행, 고용노동부, 통계청 등의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실질임금 증가율은 -3.49%을 기록하며 역대 3번째로 낮았다. 실질임금은 `명목임금/소비자물가지수X100‘이다. 실질임금 증가율은 외환위기 때인 1998년 -9.31%로 최저치를, 금융위기 때인 2008년에는 -8.54%을 나타낸 바 있다.
1994년부터 2010년까지 이들 3개년을 제외한 다른 해의 실질임금 증가율은 0.98(2001년)에서 8.16%(2002년) 사이에서 등락해 실질임금이 모두 올랐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 실업률을 더한 경제고통지수는 7.5에 달했다. 이는 카드대란 직후인 2001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올해의 경제고통지수는 1∼10월 평균소비자물가 상승률 4.0(%)과 실업률 3.5(%)를 더해 산출했다. 경제고통지수가 가장 높았던 해인 2001년에는 8.1(물가 4.1+실업률 4.0)이었다. 이후 2008년에는 7.9(물가 4.7+실업률 3.2)로 두 번째였다.
특히 실질임금 증가율과 가계고통지수 모두 소비자물가지수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결국 올해 고공행진을 나타낸 물가가 가계고통지수 상승의 주범이 됐다. 가계고통은 또한 글로벌 경기 둔화로 내년 상반기에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올해 들어 10월까지 청년층 체감실업률은 20%를 넘어섰으며 정부, 한국은행, 각종 연구소는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당초 예상보다 이미 낮춰잡았다.
◆ 제조업 업황전망 2년 5개월만에 최저
제조업의 2012년 1월 업황 전망도 2년 5개월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그만큼 투자여력이 줄어 고용에는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한국은행이 이날 2774개 법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1년 12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 따르면 제조업의 2012년 1월 업황전망BSI는 전월보다 4포인트 떨어진 79를 기록했다. 이는 2009년 7월 78을 기록한 후 최저치다.
올해 12월 업황BSI는 전월보다 3포인트 떨어진 80으로, 지난 8월 80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업황BSI는 100을 넘으면 경기를 좋게 느끼는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는 많다는 의미다. 100 이하이면 경기를 좋게 보지 않는 기업이 더 많다는 뜻이다.
대기업의 업황BSI(89)는 전월과 같았다. 중소기업(76)은 4포인트 하락했고 수출기업(78)과 내수기업(81)은 각각 4포인트와 3포인트 떨어졌다. 제조업은 매출, 채산성, 자금사정의 실적, 다음달 전망 모두 악화했다.
매출BSI의 12월 실적은 92, 다음 달 전망은 91로 전월보다 각각 2포인트와 3포인트 떨어졌다. 채산성BSI도 12월 실적은 전월보다 4포인트 떨어진 84, 다음 달 전망은 2포인트 하락한 85에 그쳤다. 자금사정 BSI의 12월 실적과 다음 달 전망은 각각 85로, 전월보다 3포인트씩 떨어졌다.
계절변동에 의한 요인을 제거한 제조업의 계절조정 업황BSI는 88에서 86으로, 다음 달 전망은 89에서 85로 줄어들었다. 비제조업의 이달 업황BSI는 83으로 전월보다 5포인트 올랐지만, 다음 달 전망BSI는 79로 3포인트 하락했다. 계절조정치로 보면 업황BSI가 81로 전월보다 4포인트 오른 반면 다음 달 전망은 83으로 1포인트 하락했다.
제조업과 비제조업 모두 가장 큰 경영애로사항으로 내수부진과 불확실한 경제상황을 들었다. 내년 제조업의 업황전망은 올해 실적BSI보다 1포인트 높은 88로 집계됐다. 비제조업의 업황전망은 올해 실적보다 3포인트 낮은 83이었다.
◆ 경제 전문가들 "가계위기관리에 정책 최우선"
경제 전문가들은 이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정부와 통화당국이 가계 부실을 심화시키지 않도록 하는데 정책의 최우선 과제를 모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주체 가운데 가계는 내년 하반기나 돼서야 다소 회복될 것 같다"면서 "정책의 우선순위가 가계의 위기관리에 집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경제가 어려워지면 금융 부문에서의 구조조정이 가계의 고통을 늘리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특히 고령층과 여성, 청년층 등 취업취약계층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통화당국이 금리인상에 실기하면서 경기부양카드인 기준금리 인하여력은 줄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은이 금리인하를 고려하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당국이 가계대출을 축소하려는 금융권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