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기자) “주기도문에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구절이 있지만 영어 성경에는 그것이 일용할 빵(daily bread)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빵은 이렇게 양식 전체 혹은 더 확장하면 의식주의 모든 물질적 생활을 상징하는 제유적 의미로 쓰이고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빵처럼 식탁 위에 매일 오르는 음식물을 어쩌다가 명절 잔칫날에나 먹는 떡으로 옮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중략) 단어 하나가 아니라 성경의 수사 구조 전체가 망가지고 말 것입니다.”
이어령(77) 전 문화부장관이 성경을 분석한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열림원)를 발간했다. 새로운 방식의 성경 읽기를 제시한 안내서다. '성경을 알면 사람이 보인다'는 부제가 붙어있다.
성경 읽는 즐거움을 전하기 위해 이어령 전 장관이 택한 방식은 성경에 등장하는 상징적인 아이콘들을 키워드 삼아서 문화사적 맥락과 컨텍스트를 추적해나간다. 문학작품처럼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소, 그리고 플롯 등을 하나하나 풀어서 해석한다.
성경 원서의 ‘빵’과 한글 성경의 ‘떡’을 비교하는 대목은 시학적 독서법을 주문하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다. 이 전 장관은 빵을 떡으로 번역한 것은 제유법이라는 수사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온 오류임을 지적한다.
이 전 장관은 또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낙타’를 설명하면서도 남다른 문화적 지식을 활용한다.
성경 중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게 더 쉬우니라’라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낙타의 히브리어 표기는 ‘gamla’이고 밧줄은 ‘gamta’인데 두 단어의 철자가 비슷해서 ‘밧줄’을 ‘낙타’로 잘못 번역했다는 설을 소개한다.
2007년 7월 개신교로 귀의한 이 전 장관은 지난해 3월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출간한 바 있다.
이 전 장관은 2007년 당시 온누리교회 등이 일본에서 개최한 문화선교집회 ‘러브 소나타’ 행사 때 하용조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이 전 장관은 ‘책 뒤에 붙이는 남은 말’에서 “생활과 문화 코드가 다른 사람들이 성경을 읽는다면 어떻게 될까”라며 “그 생각을 적은 것이 바로 이 작은 책”이라고 글을 쓴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340쪽. 1만7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