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게 먹이를 주고 장작을 패며 세계를 떠돌아다니리.
내일부터 양식과 채소에 관심을 가지리.
나의 집은 바다를 마주하였으니 화창한 봄날에는 꽃이 피리'
중국 현대시인 하이즈(海子: 바다의 아들이란 뜻)의 '바다를 마주하고 화창한 봄날 꽃이 피다(面朝大海, 春暖花開)'라는 시의 한 대목이다.
시인 하이즈는 이 시에서 '바다가 보이는 곳에 집을 짓고 내일부터 행복한 사람이 되리라”라는 소박한 소망을 노래했다. 하지만 그에게 ‘꽃피는 봄날’은 아주 멀리 있는 관계로 실현되기 어려우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지만 필자가 오늘 얘기하려고 하는 것은 하이즈의 ‘꽃피는 봄날’이 아닌 허베이(河北)성 탕산(唐山)시의 ‘꽃피는 봄날’이다. 지난 1976년 대지진이 일어났던 곳으로 유명한 도시 탕산. 이 도시는 과연 어떤 곳이며 현재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탕산은 바다에 접해있었음에도 항구가 없어 연해도시 축에 들지 못했다. 1980년대 중반 중국정부가 지정한 14개 연해 개방도시들은 대부분 규모가 비교적 큰 도시였다. 탕산 역시 ‘비교적 큰 도시’였으나 항구가 없다는 이유로 이 명단에서 제외됐다. 탕산은 이러한 서러움을 떨치고 진정한 연해도시로 자리매김한다는 목표아래 차오페이뎬(曹妃甸)과 징탕(京唐) 2개 항만을 건설하고 나섰다.
차오페이뎬은 항만을 위한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수심이 30m로 보하이(渤海)만 해역에서 유일하게 항로 굴착없이 30만t급 대형 화물선의 입항이 가능하다. 일찍이 1912년에 순중산(孫中山)은 탕산의 공업과 교통을 시찰한 뒤 1919년 제기한 <건국방략(建國方略)>에서 탕산에 항만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구커우(大沽口)와 친황다오(秦皇島) 중간의 해안선 골짜기는 즈리(直隸)만에서 가장 깊은 곳이다. 이곳에 항만을 건설해 뉴욕과 대등한 대외무역의 창구로 만들어야 한다.” 순중산이 말한 따구커우는 톈진시 동남쪽에서 50km에 위치해 있으며 하이허(海河)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곳이다.
그로부터 85년이 지난 2004년, 차오페이뎬항을 포함한 '보하이만지역 연해항구 건설계획'이 국무원의 비준을 받아 차오페이뎬항은 그 이듬해부터 시공에 들어갔다. 60여km에 달하는 해안선상에 30만t급 대형 부두 16개, 10~15만t급 부두 50개, 5~8만t급 부두 200개가 세워져 광석, 석탄, 원유, 천연가스, 컨테이너, 벌크, 잡화 등 다양한 화물을 취급하게 된다. 차오페이뎬항과 기존의 징탕항을 하나의 항구로 묶은 탕산항은 현재 화물처리량이 2.5억t에 달하며, 오는 2030년까지는 부산항의 2배가 넘는 5억t을 처리해 중국 최대의 항만으로 성장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다.
차오페이뎬은 또 철강, 장비제조, 석유화학, 물류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 북부 최대의 중화학공업기지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국가급 순환경제시범구인 차오페이뎬은 2005년부터 갯벌 매립 사업이 시작돼 현재 150평방km 매립에 성공했다. 이곳에 오는 2030년까지 310평방km에 달하는 광활한 공단이 조성된다. 중국 최대 철강단지로 육성되는 이곳에 서우두강철그룹(首都鋼鐵) 제철소가 이미 2007년 베이징으로부터 이전해왔으며, 국영 정유업체인 페트로차이나(中國石油)도 이곳에 원유 부두를 세웠다. 현재 매일 4억위안이 차오페이뎬에 투자되고 있으며 누적 투자액은 3000억위안을 넘었다. 25만t급 부두와 연산 500만t의 제철소, 줄지은 주택가…차오페이뎬의 변화는 그야말로 눈이 부실 정도다.
인근 각 지역에서 탕산으로 공장을 이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탕산시 내부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탕산강철그룹을 비롯한 많은 기업들이 탕산의 옛 구역에서 동남 연해신구로 옮겨가는 이른바 ‘동남비(東南飛)’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줄곧 내륙형 자원도시를 표방했던 공업도시 탕산의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탄광에서 태어나고 철강으로 강성해졌으며 오늘날 항만으로 번영하고 있는 도시 탕산. 이 도시가 바다를 향해 파란 꿈을 펼치고 꽃이 활짝 피는 봄날을 맞기 위해 용트림을 하고 있다.
<김부용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