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번 입찰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간 농협 NH-OIL 주유소가 공급받아온 물량을 통해 정유사의 최소 할인 가능폭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같은 정보를 바탕으로 내정가격을 정해놓고 정유사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응찰가격을 부를 때까지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그간 농협의 NH-OIL 주유소는 GS칼텍스로부터 공동구매를 통해 기름을 사왔다. 남해화학으로부터도 공급받고 있지만, 거리상으로 공급이 가능한 일부 지역에 한정돼 있다.
석유공사의 가격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달 상표별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GS칼텍스 계열 주유소가 리터당 1985.13원, NH-OIL 주유소가 1951.76원이었다. 약 34원의 격차가 벌어진다.
정부가 기대하는 50~100원 정도의 알뜰주유소 가격 경쟁력에는 못 미치지만, 그 정도만 돼도 시장에는 상당한 파급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주유소업계 관계자는 “지방의 경우 인근 주유소와 10원만 비싸도 판매량이 급감한다”며 “특히 NH-OIL 주유소 인근 자영 주유소들은 가격차이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알뜰주유소의 부작용이 우려되는 한편, 34원의 시장 파급력을 가늠케 하는 말이다.
물론 NH-OIL 주유소가 가격이 싼 편인 지방에 많이 분포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공급가는 그보다 격차가 덜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같은 달 최고 가격은 SK에너지 상표 주유소의 1989.35원, 최저 가격은 무폴(무상표 자가폴) 주유소의 1947.12원으로, 가격차는 더 벌어졌다. 전국 평균가 대비 알뜰주유소의 가격차이를 더 벌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알뜰주유소에는 NH-OIL과 더불어 무폴 주유소가 편입되고, 정부가 각종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사실상 정부가 입찰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가운데 첫 번째 입찰은 정유사의 응찰가격이 정부의 내정가격 수준에 못 미쳐 유찰됐다. 정부가 무리한 가격을 요구한 것일 수도 있고, 정유사가 34원에도 못미치는 할인폭을 제시했을 수도 있다. 양측은 이번 응찰가격 수준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고 있어 사실 확인은 어렵다.
일각에서는 이번 유찰로 알뜰주유소가 전면 백지화 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정부는 만족할 만한 응찰가가 나올 때까지 유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입찰이 거듭 불발되더라도 최소한 기존 NH-OIL에 제시돼 왔던 할인폭을 요구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또 한편, GS칼텍스의 경우 기존에 공급해왔던 NH-OIL 물량이 한꺼번에 이탈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이번 입찰에 매달릴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