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1차 목표는 횡령을 직접 주도한 정황이 포착된 최재원(48) SK 수석부회장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있지만, 형인 최태원(51) SK그룹 회장의 관여 정도를 규명하는 일도 과제로 남아있다.
검찰이 지난 8일 SK그룹 본사와 계열사 10여곳을 압수수색한 이후 일주일이 경과한 15일 현재 이번 사건 수사는 ▲자금세탁을 통한 투자금 횡령 ▲계열사 투자금 담보 대출 ▲비상장 주식 고가 매입 등 크게 세 갈래로 진행되는 양상이다.
◆베넥스-컨설팅업체 ‘수상한 거래’
SK그룹 18개 계열사는 2007년부터 최근까지 약 2천800억원을 베넥스에 투자했다.
SK그룹 상무 출신인 이 회사 대표 김준홍(46)씨는 최 회장 형제와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그는 박성훈(44) 글로웍스 대표와 함께 주가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지난 5월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검찰은 SK 계열사 투자금 2800억원 가운데 약 1000억원이 김준홍씨의 차명계좌를 통해 김원홍(50.해외체류) 전 SK해운 고문의 계좌로 흘러들어간 흐름을 포착했다.
증권맨 출신 역술인 김원홍씨는 최 회장의 자금 5000억원 이상을 맡아 선물에 투자했다가 3000억원대 손해를 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즉 SK 총수 일가가 계열사 투자금을 빼돌려 개인 선물투자에 썼다는 것이 이번 수사의 밑그림인 셈이다.
검찰은 베넥스 자금이 김준홍씨 계좌로 들어가기까지 수많은 계좌를 거쳐 세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자금세탁에 동원된 계좌 수는 1500개에 달하며 이 계좌를 오간 금액을 단순 합산하면 2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검찰은 베넥스와 경영컨설팅업체 K사 사이의 자금 흐름에서 수상한 흔적을 발견했다.
검찰은 베넥스가 2008년 10월 K사에 500억원대 자금을 빌려줬다가 한 달 뒤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은 사실을 파악하고 이 돈이 실제로 K사에 들어갔는지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류상으로는 K사에 돈을 빌려준 것으로 기재했지만 실제로는 김준홍씨 계좌에 돈이 들어갔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베넥스가 돌려받은 원리금도 K사가 갚은 돈이 아니라 SK그룹 계열사에서 동원한 자금 아니겠느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저축은행 대출금 용도는
최 회장 형제는 2008년 말부터 여러 저축은행에서 1000억원대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출금 중 일부는 차명으로 빌렸고 대출해준 저축은행 중에는 최근 영업정지된 곳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이 대출금도 직접 선물투자에 쓰였거나 선물투자로 손해 본 금액을 보전하는 데 투입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최 회장 형제가 그룹 계열사들이 베넥스에 투자한 자금을 담보로 제공하고 대출을 받은 것은 아닌지 살피고 있다.
만일 베넥스 투자금이 담보로 제공된 것이 사실이라면 최 회장 형제에게 횡령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700배 가격에 비상장주 사들여
베넥스는 지난해 5월 액면가 5천원인 I사 주식 6500여주를 무려 700배인 주당 350만원에 매입했다.
베넥스가 사들인 I사 주식 소유주 중에는 최 회장 형제가 저축은행에서 차명대출을 받을 때 이름을 빌린 구모씨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최 부회장이 구씨 등 지인 이름을 빌려 I사 주식을 차명으로 보유했고 베넥스를 통해 이 주식을 고가에 매입하는 방법으로 계열사 투자금을 빼돌린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또 김준홍씨의 개인 횡령 혐의도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씨가 베넥스 자금 25억원을 C사에 투자한 것처럼 꾸미고 실제로는 김씨 장인이 회장으로 있는 A사로 빼돌린 정황을 파악하고 지난 9일 C사와 A사를 압수색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김준홍씨를 압박해 최 회장 형제의 혐의를 입증할 진술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라고 보는 관측도 있다.